고래는 현재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동물 중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입니다. 심지어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고래보다 더 거대한 생물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공룡조차도 고래보다 크게 성장한 사례는 아직 보고된 사례가 없다는 것만 봐도 그렇죠. 고래는 그런 점에서 생물의 진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생물입니다.
고래 중에서 몸집이 큰 고래들은 향고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염이 있는 수염고래들입니다. 이 고래들은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특이하게도 먹는 먹이는 매우 작습니다. 수염이 있는 고래들의 주 먹이는 크릴이라고 하는 새우의 친척뻘인 작은 플랑크톤입니다. 이 크릴을 물과 함께 빨아들인 뒤에 수염을 통해서 물은 빼내고 크릴만 걸러내는 방식으로 먹이를 먹습니다. 이 수염은 본래 이빨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수염고래의 먼 조상이 이빨을 통해서 먹이를 물에서 걸러 먹다가 진화하면서 수염을 가지게 된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 먹이를 먹는 것을 여과섭식이라고 합니다 (수염고래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 보러가기).
그런데 혹시 이런 궁금증을 가져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과연 수염고래 이전에는 수염고래처럼 먹이를 수염과 같은 걸로 걸러먹는 생물은 없었을까?'하는 궁금증 말입니다. 몇몇 고생물학자들은 과연 수염고래의 먹이를 먹는 이 특이한 방식이 과연 고래에서 처음 등장한 것인지 아니면 고래 이전에도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여러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에 대해서 다루어보겠습니다.

(1). 일반적으로 여과섭식을 하지 않는 파충
오늘날 살아있는 해양 파충류라면 바다거북과 바다뱀, 그리고 바다이구아나가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여과섭식을 하지 않습니다. 거북이 여과섭식과 비슷하게 물과 먹이를 같이 빨아들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물을 걸러낸 것이 아니라 물을 같이 삼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여과섭식은 파충류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1997년에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재단 소속의 과학자 레이첼 콜린(Rachel Collin)과 영국 브라운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크리스틴 재니스 (Christine Janis)은 사지동물의 여과섭식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포유류에서 여과섭식이 가능한 이유는 해부학적 차이에서 그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여과섭식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크게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빨아들인 물을 바깥으로 빼내는 능력, 그리고 먹이만 입안에 거를 수 있는 능력이죠. 첫번째 능력같은 경우 어류에게는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빨아들인 물을 아가미로 거르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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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지동물에는 아가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물을 거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물에서 사는 포유류인 고래는 이를 수염을 통해서 해결하였습니다. 입안에 먹이를 물과 함께 빨아들인 뒤에 물만 뱉고 먹이는 수염으로 걸러내는 것이죠. 이때 기도 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통로를 막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물을 빨아들일 때와 물만 뱉어낼 때 얼굴에 가해지는 수압을 버틸 수 있는 얼굴근육이 필요합니다. 포유류는 진화 과정에서 얼굴에 근육이 발달하면서 후자는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자의 문제, 그러니까 물이 기도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문제 역시 진화 과정에서 별도의 뼈와 근육이 발달하면서 해결하였습니다. 이차구개골, 그러니까 입천장뼈가 발달하면서 입과 코 사이가 막히고 그와 함께 목구멍에도 근육-정식 명칭은 후두 덮개(epiglottis)로 여기서는 목구멍 근육이라고 쓰겠습니다.-이 발달하게 되면서 해결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실에도 물이 기도로 들어가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파충류는 이런 특징들이 없습니다. 파충류는 입천장뼈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구멍에도 포유류의 것과 같은 근육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얼굴근육이 포유류만큼 두개골을 덮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파충류는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유일하게 예외인 사례가 있다면 악어뿐입니다. 악어는 다른 파충류와는 별도로 입천장뼈가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목구멍 근육의 역할을 하는 경구개막(palatal valve)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물속에 들어갔을 때 물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수 있습니다. 즉, 파충류는 포유류와는 달리 여과섭식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설계'가 부족합니다. 앞서 거북은 여과섭식을 한 사례가 있다고 소개하였는데, 이 사례에서도 거북은 고래나 고래상어와는 달리 그냥 물을 같이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먹이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멸종한 과거 해양파충류들, 어룡이나 수장룡, 모사사우루스와 같은 생물들은 어떨까요? 이들에게서는 여과섭식의 흔적이 발견된 사례가 있을까요? 한 어룡에서 여과섭식의 가능성이 제기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다음 단락에서 어떤 어룡이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여과섭식을 하는 어룡...?
1972년에 새 어룡의 화석이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후페수쿠스 난캉엔시스(Hupehsuchus nanchangensis)라는 이름이 붙은 어룡입니다. 대략 2억 5천만 년 전에 중국 허베이성에서 만들어진 지알린지앙층(Jialingjiang Formation)이라는 지층에서 발견된 이 어룡은 한가지 재밌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빨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에서 사는 파충류들은 여과섭식을 하지 않음으로 이빨을 가지고 먹이를 사냥하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후페수쿠스는 이빨이 없다는 점이 매우 독특한 것이죠. 이빨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이빨이 아니라 화석으로 남지 않는 수염 같은것이 있었다는 뜻이 될지 모릅니다. 그것이 맞다면 이 파충류는 수염고래의 먼 선배가 됩니다. 이빨을 잃고 수염만 가진 고래가 등장한 시기가 대략 2천 5백만 년 전이니까 무려 2억 2천 5백만년이 넘는 어마어마한 선배가 되는 것이죠.
1991년에 이 어룡을 연구하였던 캐나다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캐롤(Robert L. Carroll)과 중국의 고생물학자 동 지밍( Dong Zhi-Ming)은 후페수쿠스에게 1) 이빨이 없다는 점, 2) 거북이의 부리와 같은 구조는 없다는 점, 3) 주둥이가 가늘고 긴 것이 오늘날 수염고래의 주둥이와 비슷하다는 점, 4) 몸집의 크기가 초창기 수염고래와 비슷한 3-4미터 정도라는 점 등등을 예로 들면서 후페수쿠스가 어쩌면 여과섭식을 하였던 어룡이 아니었을까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어룡은 수염고래와는 달리 목이 길고 머리는 작아서 여과섭식을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좀 어렵지도 않았을까 하는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즉 여과섭식의 가능성을 제기하였지만 동시에 약간의 한계점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페수쿠스는 과연 여과섭식을 하였을까요? 최근에 후페수쿠스의 여과섭식 방식에 대한 연구가 여러 편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후페수쿠스는 여과섭식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해선 차이점이 있었다고 하네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요? 그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계속)
연구 및 자료 출처-
Carroll, R. L., & Zhi-Ming, D. (1991). Hupehsuchus, an enigmatic aquatic reptile from the Triassic of China, and the problem of establishing relationship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31(1260), 131-153.
Collin, R., & Janis, C. M. (1997). Morphological constraints on tetrapod feeding mechanisms: why were there no suspension-feeding marine reptiles?. In Ancient marine reptiles (pp. 451-466). Academic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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