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읽다/포유류

수염이 달린 고래-고래가 수염을 가지게 된 이야기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1. 6. 2. 07:54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이 삽니다. 그중에서 고래는 상당히 특이한 동물이라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고래는 현재까지 사는 동물 중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공룡보다도 더 거대하지요!

가장 거대한 동물 흰긴수염고래(대왕고래). 출처-https://www.publicdomainpictures.net/en/view-image.php?image=151135&picture=blue-whale-blue-whale

 고래는 이빨을 가진 이빨고래, 그리고 수염을 가진 수염고래로 나누어집니다. 이빨고래는 우리에게 익숙한 돌고래와 범고래가 있습니다. 수염고래는 이빨을 잃은 대신 그 자리에 매우 두텁고 빽빽한 수염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고래의 수염을 직접 만져볼 기회가 있었는데, 매우 질기고 튼튼한 수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래의 수염은 케라틴 성분이기 때문이죠. 케라틴은 단백질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사람의 머리카락, 손톱도 케라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혹등고래의 수염.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umpback_whale_baleen.jpg

 고래의 수염은 먹이를 먹을 때 이용합니다. 수염고래의 먹이인 물에서 떠다니는 플랑크톤을 먹을 때 사용하죠. 수염고래들은 먹이를 먹을 때 입을 크게 벌려서 물과 함께 먹이를 삼킨 뒤, 수염으로 물을 다시 뱉어냅니다. 그러면 먹이(플랑크톤이나 갑각류)는 수염에 걸려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래의 입속에 그대로 남게 되지요. 그러면 고래는 입속에 남은 먹이를 삼키면 되죠. 이런 방식을 여과 섭식(filter feeding)이라고 합니다.

 일부 수염고래는 바닥에서 먹이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바닥에서 먹이를 찾는데, 진흙과 그 속에 숨어있는 갑각류, 조개류들을 전부  흡수한다음, 수염으로 진흙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먹이를 먹습니다. 먹이를 먹는 방식을 흡입 섭식(suction feeding)이라고 합니다. 여과 섭식과 흡입 섭식 모두 수염을 이용해서 먹이를 걸러 먹는 수염고래만의 독특한 먹이를 먹는 방식이지요.

수염으로 먹이를 걸러 먹는 여과 섭식. 출처-https://coastalstudies.org/connect-learn/stellwagen-bank-national-marine-sanctuary/marine-mammals/cetaceans/baleen-whales/
먹이를 먹는 귀신고래. 이런 방식을 흡입 섭식이라고 한다. 출처-https://insider.si.edu/2011/07/a-varied-diet-has-helped-gray-whales-survive-for-millions-of-years-study-reveals/

 과연 고래는 언제부터 수염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수염이 없는 수염고래의 조상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수염고래의 화석은 2017년 페루에서 보고되었습니다. 3천 6백 4십만 년 전에 살았던 4m 크기의 이 고래에게 미스타코돈 세레넨시스 (Mystacodon selenensis)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다만 아직 이 고래에게선 직접적인 수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빨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수염고래와 비슷하게 먹이를 이빨로 걸러내었다는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빨 표면에 긁힌 흔적이 패턴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죠. 따라서 직접적인 수염은 없었으나, 미스타코돈은 아주 원시적인 수염고래의 조상 격이 된다고 볼 수 있겠군요.

미스타코돈의 이빨. 출처-De muizon, et al., (2019)
미스타코돈의 모습. 출처-De muizon, et al., (2019)

 미스타코돈 이후에 살았던 3천만 년 전 즈음의 고래도 이빨을 이용해서 섭식을 한 정황이 보입니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발견된 이 고래에는 코로노돈 하벤스테이니 (Coronodon havensteini)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고래는 어금니가 왕관이나 부채와 비슷하게 크게 펼쳐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을 다물 때 이빨이 서로 맞물려져서 매우 촘촘한 구조를 하게 되지요. 따라서 먹이를 걸러 먹는 것에 적합합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코로노돈은 먹이를 걸러 먹는데 매우 적합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노돈. 출처-http://novataxa.blogspot.com/2017/06/coronodon.html
코로노돈의 이빨. 입을 다물면 이빨들이 서로 정확히 맞물려져서 먹이를 걸러 먹기 적합하다. 출처-http://novataxa.blogspot.com/2017/06/coronodon.html
코로노돈의 어금니. 출처-http://novataxa.blogspot.com/2017/06/coronodon.html

이빨과 수염을 모두 가진 고래

 본격적으로 수염을 지니게 된 고래는 2천 4백만~5백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남태평양과 북태평양 지역에서 발견된 두 고래의 화석에서는 특이하게 이빨과 수염의 흔적이 모두 보존되어 있었지요. 그 고래들은 잔주케투스 훈데리 (Janjucetus hunderi)와 아에티오케투스 웰토니 (Aetiocetus weltoni)라는 고래들입니다.

이빨과 수염을 모두 지닌 고래 아에티오케투스.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Aetiocetus

 물론 수염 자체는 화석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수염은 화석화 과정에서 썩어서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면 수염이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고래들의 수염은 입천장이나 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수염들은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흔적은 미세한 관(canal)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관은 혈액을 공급하는 관으로, 오늘날 고래들의 수염 역시 이런 식으로 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의 형태를 최근에 CT로 스캔해서 복원해냈습니다. 복원한 관의 구조는 오늘날 수염고래들의 주둥이에서 보이는 관의 구조와 유사하였지요. 따라서 이빨과 동시에 수염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아에티오케투스의 이빨, 수염에 연결된 관의 구조. 출처-Ekdale and Deméré (2021)

이빨을 완전히 잃은 고래

고래는 언제 이빨을 완전히 잃게 되었을까요? 2천 7백 5십만~2천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고래 화석을 살펴본 결과 이들은 이빨을 완전히 잃고 수염만 지니게 되었습니다. '어? 위에서 2천 4백만 년 전에 살았던 고래는 이빨과 수염이 같이 있었는데 좀 더 예전에 살았던 고래는 수염만 있네?'라고 의문이 드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진화라는 것은 일직선으로 일어나는 구조가 아니라 다양성을 가지며 퍼져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화석기록에서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즉, 잔주케투스나 아에티오케투스는 직접적인 수염고래의 조상은 아닐 가능성이 있지요. 하지만 오늘날 수염고래들의 조상이 과거 이빨과 수염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다시 고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장 원시적인 고래는 뉴질랜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015년에 토카라히아 카우마에로아(Takarahia kauaeroa), 토카라히아 로포케팔루스(Takarahia lophocephalus)라는 두 종의 고래들이 보고되었죠. 이 고래들은 2천 5백만 년 전 즈음에 살았습니다.

토카라히아의 화석. 출처-Boessenecker and Fordyce, (2015)

 그리고 2018년에는 뉴질랜드에서 좀 더 이른 시기에 살았던 고래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고래에겐 토이파하우테아 와이타키(Toipahautea waitaki)라는 이름이 붙여졌지요. 이 고래들은 머리 부분만 발견되었지만, 턱에서 이빨이 없고 수염만 존재한 정황이 보이는 것이 이 고래들은 수염만 지녔다는 점을 보여주지요.

토이파하우테아의 화석. 출처-https://www.stuff.co.nz/science/103193533/oldest-baleen-whale-in-the-world-found-in-a-south-island-quarry

 화석기록과 유전학 연구를 통해서 살펴보면 수염고래는 여러 번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한 분류군에서 쭉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분류군에서 따로따로 진화한 것이죠. 고래가 이렇게 따로 따로 수염을 발달시키며 진화한 것은 환경변화, 그중에서 해양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즉, 오늘날 지구상에 살던 거인들의 기원은 한 분류군에서 일직선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분류군에서 따로 따로 갈라지면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죠.

 

번외:고래는 왜 거대할까?

 오늘날 사는 가장 거대한 생물 고래. 정확히는 수염고래들이 매우 거대합니다. 근데 위에서 살펴본 고래들은 모두 몸길이가 4~5m 정도의 그리 거대하다고 하기엔 어려운 고래들뿐입니다. 그러면 수염고래들은 언제, 왜 거대해진 걸까요? 사실, 고래가 거대하게 진화한 것은 지질학적으로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마이오세 후기였던 3백만 년 전부터 고래가 거대해지는 정황이 화석기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시기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빙하기 시기인 신생대 말의 빙하기가 시작되는 시기였지요. 마이오세 말기에 들어서면서 전 지구적으로 기후 변화가 일어나면서 빙하기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육지에서 빙하가 대규모로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녹으면서 욱지에 있는 다량의 영양염류가 바다로 침투하게 되었죠. 동시에 용승 현상이 대규모로 일어났습니다. 용승 현상이란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류의 흐름으로, 바닷물이 위아래로 순환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서 육지에서 흘러들어온 영양염류가 바다에 대규모로 퍼지게 되고, 대규모로 퍼진 영얌염류는 플랑크톤의 증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극지방에서 열대지방까지 해류가 흐르는 전 지구적인 해류의 흐름도 이 시기에 일어나게 되었지요(이 시스템은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망가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환경은 곧 플랑크톤의 종과 밀도가 대규모로 증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래의 먹이는 매우 많아지게 되면서 고래는 거대해지게 되었습니다. 즉, 빙하기가 고래의 거대화를 부르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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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출처-

 

Boessenecker, R. W., & Fordyce, R. E. (2015). A new genus and species of eomysticetid (Cetacea: Mysticeti) and a reinterpretation of ‘Mauicetus’ lophocephalus Marples, 1956: transitional baleen whales from the upper Oligocene of New Zealand.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175(3), 607-660.

 

De Muizon, C., Bianucci, G., Martínez-Cáceres, M., & Lambert, O. (2019). Mystacodon selenensis, the earliest known toothed mysticete (Cetacea, Mammalia) from the late Eocene of Peru: anatomy, phylogeny, and feeding adaptations. Geodiversitas, 41(1), 401-499.

 

https://eartharchives.org/articles/the-evolution-of-filter-feeding-in-whales/index.html

 

Emlong, D. (1966). "A new archaic cetacean from the Oligocene of Northwest Oregon". Bulletin of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 University of Oregon. 3: 1–51.

 

Ekdale, E. G., & Deméré, T. A. (2021). Neurovascular evidence for a co-occurrence of teeth and baleen in an Oligocene mysticete and the transition to filter-feeding in baleen whales.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Fitzgerald, E. M. (2006). A bizarre new toothed mysticete (Cetacea) from Australia and the early evolution of baleen whale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273(1604), 2955-2963.

 

Geisler, J. H., Boessenecker, R. W., Brown, M., & Beatty, B. L. (2017). The origin of filter feeding in whales. Current Biology, 27(13), 2036-2042.

 

Slater, G. J., Goldbogen, J. A., & Pyenson, N. D. (2017). Independent evolution of baleen whale gigantism linked to Plio-Pleistocene ocean dynamic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284(1855), 20170546.

 

Tsai, C. H., & Fordyce, R. E. (2018). A new archaic baleen whale Toipahautea waitaki (early Late Oligocene, New Zealand) and the origins of crown Mysticeti. Royal Society open science, 5(4), 172453.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ecology_evolution/997103.html?fbclid=IwAR1o1dq4ZBuatEB85Tw_WawjsOIEtru3l2Rxqs1qReylD3o7IBkXBPm3Blk

 

http://ecotopia.hani.co.kr/41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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