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기린 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긴 목입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매우 길다란 이 동물의 목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학자들의 궁금증의 대상이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도 알다시피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에 대해선 2가지 유명한 가설이 있었죠. 나무 위에 있는 나뭇잎을 먹기 위해서 목이 길어졌다는 가설, 목이 긴 기린만 살아남았다는 가설이죠.
기린 외에도 목이 긴 유명한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목이 긴 공룡이 속한 분류군인 용각류이지요. 이들은 목이 길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육지에서 살았던 모든 동물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얼마 전에 덴버 자연사 박물관에 방문하였는데 (2022년 10월 초), 박물관에서 본 아파토사우루스는 너무 거대해서 제가 풍경을 촬영할 때 쓰는 넓은 화각을 담는 초광각 카메라로도 다 담을 수 없었죠 (물론, 이건 일직선으로 전시한 것이 아니라 신체를 약간 둥글게 굽힌 상태에서 전시하였던 이유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똑같이 목이 긴 동물이라 해도 기린과 용각류는 전혀 다릅니다. 기린은 목뼈가 길고 목뼈의 개수가 7개만 있지만, 용각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아서 수십 개가 있습니다. 게다가 용각류는 목뼈에 호흡한 공기가 들어가기도 하지요. 목을 잘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똑같이 긴 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이 나타나는 기린과 용각류. 그렇다면 과연 이 둘의 목이 길어진 것에도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기린과 용각류가 긴 목을 가지게 된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루었던 기린의 진화 이야기랑도 같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1). 기린의 목이 길어진 또 다른 이유(?)
예전에 다루었던 글에서 나오듯이 기린의 기원지는 아프리카입니다. 기린뿐 아니라 기린의 친척인 오카피, 그리고 지금은 멸종한 기린의 친척인 칸투메릭스아과(canthumerycinae), 기라포케릭스아과(giraffokerycinae), 보흘리니아아과(bohlininae), 팔라에오트라구스아과(palaeotraginae), 시바테리움아과(sivatheriinae)등도 역시 아프리카에서 대략 2천 3백만 년 전 즈음에 나타났지요. 화석 기록을 보면 기린이 속한 기린과(Giraffidae)의 목이 길어질 조짐은 대략 1천 4백만 년 전부터 나타났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기린의 목이 길어진 데에는 먹이 외에도 체온 조절 역할이 있을 것이란 주장도 하였습니다.
제가 그때 그 글을 쓰고나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계기가 바로 이성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지요. 이는 기린과에 속하는 새로운 동물을 연구하면서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중국 서북부의 중가르 분지(Junggar basin)에 분포한 할라마가이 층(Halamagai Formation)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대는 대략 1천 7백만 년 정도 되었죠. 이 동물을 연구한 중국과 미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연구진은 이 동물에게 신화에서 나오는 동물인 해태의 중국 발음인 씨에쯔이(Xiezhi)를 따와서 디스코케릭스 시에지(Discokeryx xiezhi)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하단의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디스코케릭스는 전신이 모두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머리뼈가 보존되어 있어 기린의 목이 진화하는 것을 해석하는 데에 힌트를 주었죠.
디스코케릭스는 매우 재밌게 생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수리가 납작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에 특별한 보호구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보호구의 윗부분에는 케라틴 성분의 커버가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살아있었을 때라면 매우 딱딱하였겠지요. 이런 보호구는 이 동물들이 머리를 부딪히며 싸웠으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디스코케릭스의 목뼈 또한 이 동물이 머리를 이용해서 싸웠음을 암시합니다. 이 동물의 머리뼈와 목뼈가 연결되는 부분, 그리고 목뼈와 목뼈 사이의 연결부위는 매우 컸습니다. 거기에 융합된 부분 역시 매우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지요. 즉, 머리를 부딪힐 때 충격을 흡수하기 좋은 구조였던 것입니다. 특히나 이 동물의 목뼈와 두개골이 연결되는 부분은 기존에 발견된 어떤 화석 동물에서 보이는 구조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동물이 머리를 부딪혀 싸우는 것에 매우 특화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머리를 부딪히며 싸우는 동물은 오늘날에도 살고 있습니다. 사향소, 양, 바위양등이 그 예시입니다. 이 동물들은 주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컷끼리 머리를 부딪치면서 싸웁니다. 따라서 연구를 주도하였던 중국의 왕 박사는 디스코케릭스의 이러한 머리구조 역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진화된 구조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머리를 부딪혀서 싸우던 방식에서 목을 부딪치는 방식으로 싸움의 방식을 바꾸었고, 그 결과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미국 뉴욕공대의 니코스 솔로우니아스(Nikos Solounias)교수는 머리를 부딪혀서 싸우는 동물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싸우는 스타일이 기린과 디스코케릭스는 다르다는 점을 들어서 디스코케릭스가 기린의 긴 목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앞으로 기린의 목에 대해서 또 어떤 연구가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2). 용각류의 목이 길어진 사연
그러면 공룡, 그러니까 목이 길었던 용각류는 어떨까요? 용각류의 목을 보면, 이들은 목이 길어질 때 2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목뼈가 길어진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목뼈에 다른 부산물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목이 길어진 이유는 식물, 그러니까 넓은 범위로 퍼져있는 식물을 먹기 유리해지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1985년에 미국 브리지포스트 대학교 (University of Bridgeport)의 갈톤 교수는 원시 용각류들, 그러니까 후대에 등장한 목이 긴 용각류들의 조상뻘에 속한 공룡들의 목이 길어진 것에는 먹이를 더 넓은 범위에서 먹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여러 실험과 관찰 끝에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용각류 공룡의 생물학: 거인들의 삶 이해(Biology of the Sauropod Dinosaurs: Understanding the Life of Giants)라는 학술서에 실린 연구 또한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1헥타르 (100mX100m)의 토지에 식물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 목이 짧은 동물과 목이 긴 동물이 식물을 먹을 때 얼마나 자주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목이 짧을수록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횟수가 더 많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목이 짧으면 1헥타르의 땅에서 먹이를 찾으러 5천 번을 움직여야 한다고 나왔지요. 그에 반해서 목의 길이가 2m 정도 되면 같은 면적에서 1250번 움직이면 필요한 양을 먹을 수 있다고 나왔습니다. 즉, 목이 길수록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죠. 이는 체력, 그러니까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특히나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이는 중요한 특징이지요. 덩치가 클수록 몸을 움직일 때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니까요. 이 가설대로라면, 용각류는 기린과는 다른 이유로 긴 목을 발달시킨 것이죠.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용각류의 긴 목은 점진적, 그러니까 감자기 확 나타난 게 아니라 꾸준히 진화하면서 발달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브라질에서 발견된 한 용각류 공룡을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2022년 10월에 산타마리아연방대학교(Federal University of Santa Maria)의 연구진은 칸델라리아 시퀸스(Candelária sequence)에서 발견된 새로운 목긴 공룡의 목뼈를 연구한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칸델라리아 시퀸스는 브라질의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이라는 지역에 분포한 2억 3천만 년 전에서 2억 2천만 년 전 시기에 만들어진 퇴적층으로, 이곳에서 기존에 여러 목 긴 공룡이 발견되어 왔습니다.
연구진이 연구에 활용하였던 목긴 공룡은 아쉽게도 목뼈만 발견되었기에 정확한 종류는 알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공룡의 목뼈는 이 공룡이 발견된 지역보다 오래된 지역에서 발견된 목 긴 공룡과 이후에 만들어진 지역에서 발견된 목 긴 공룡의 중간과정에 해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 목 긴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층보다 더 하부에 만들어진 층에서 (더 오래된 지층을 뜻하겠지요? 지사학의 법칙 보러 가기) 발견된 용각류 부리오레스테스 스쿨지(Buriolestes schultzi)의 경우에는 목의 길이가 더 짧았습니다. 거기에 머리의 크기도 더 컸지요. 그 반면에 훨씬 더 위에 만들어진 층에서 발견된 용각류 마크로콜룸 이타쿠이(Macrocollum itaquii)의 경우엔 목이 훨씬 더 길고 머리도 더 작았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자면 대략 1천만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원시적인 용각류의 목뼈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구진은 목 긴 공룡의 목이 길어지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그러니까 서서히 진화하였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1천만 년이면 긴 시간 아닌가?'할 수 있지만... 지질학적으로 1천만 년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요. 즉, 빠른 시간 동안 원시적인 용각류의 목은 서서히 길어졌다는 것이 화석기록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긴 목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긴 목을 지니게 된 사연은 각각 달랐던 기린과 용각류. 그러면 이 둘의 목은 어떻게 차이가 났을까요? 이 둘은 목, 그리고 신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계속)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www.nytimes.com/2022/06/02/science/giraffe-neck-evolution.html
https://edition.cnn.com/2020/11/17/americas/dinosaur-sauropods-long-necks-scn/index.html
Damke, L. V. S., Bem, F. P., Doering, M., Piovesan, T. R., & Müller, R. T. (2022). The elongated neck of sauropodomorph dinosaurs evolved gradually. The Anatomical Record, 1–11. https://doi.org/10.1002/ar.25107
Galton, P. M. (1985). Diet of prosauropod dinosaurs from the Late Triassic and Early Jurassic. Lethaia, 18(2), 105-123.
Wang, S. Q., Ye, J., Meng, J., Li, C., Costeur, L., Mennecart, B., ... & Deng, T. (2022). Sexual selection promotes giraffoid head-neck evolution and ecological adaptation. Science, 376(6597), eabl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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