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코끼리의 먼 친척은 1천만 년 전에는 무려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였지요. 오늘날에는 전혀 살지 않는 지역에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코끼리 그리고 매머드는 언제 나타난 것일까요?
1. 코끼리상과의 등장
코끼리, 매머드 모두 코끼리상과라는 분류군에 속합니다. 코끼리상과라는 분류군은 이전 글에서 나왔던 엘레판티다의 한 분류군으로, 곰포테리움과와 가까운 친척입니다. 이 분류군에는 코끼리와 매머드, 그리고 스테고돈과라는 동물이 속합니다.
스테고돈과는 1천 5백만 년 전 즈음에 아시아에서 주로 살았던 코끼리의 친척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 일본, 파키스탄, 태국, 중국, 미얀마 등에서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일부는 조상들의 땅으로 되돌아간 셈이죠. 스테고돈과에 속하는 동물은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스테고돈(Stegodon)과 스테골로포돈 (Stegolophodon)으로 나누어집니다.
스테고돈은 여러 종이 있는데, 거대한 종의 경우는 키가 대략 4m 정도에 달하는 크기였습니다. 그에 반면에 오늘날 아시아의 섬나라들,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섬등에서 살았던 스테고돈은 섬 왜소화 현상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섬 왜소화란 외부와 연결이 단절된 고립된 섬에서 사는 동물들의 신체 크기가 다른 친척들보다 작아지는 현상으로, 섬에서 나는 먹이의 양이 육지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공룡이 살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일어나는 현상이죠. 수마트라 호랑이, 셀레베스들소 등 여러 동물들에게서 관측됩니다.
2. 땅굴을 파던 거대한 두더지
매머드는 아마 가장 유명한 코끼리의 친척일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매머드가 처음 발견될 당시엔 매머드를 코끼리의 친척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매머드의 첫 화석은 무려 1722년에 러시아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그것이 코끼리의 친척이 아니라 땅굴을 파고 살았으며 햇빛을 피하는 거대한 두더지의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매머드라는 이름도 바로 러시아어에서 기원하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원주민 중에서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의 언어 한티어로 '땅속에서 굴을 파고 살며 햇빛을 받으면 죽는 두더지와 같은 생물'이라는 뜻의 마문트이라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재밌게도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서도 등장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본 내용은 이글루스의 迪倫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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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경'에 북방에는 두꺼운 얼음 밑에 큰 쥐가 있어 그 무게는 천 근이나 되고 이름은 분서로 땅속을 뒤지고 다니며 해와 달을 보면 즉사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악라사국-러시아-에는 바다가 가까운 북쪽 지방에 코끼리만 한 쥐가 있어 땅속을 뒤지고 다니다가 바람을 만나거나 해를 보면 즉사하며, 그 뼈는 상아와 같으므로 토인들이 접시, 사발과 빚, 비녀를 만든다. 짐도 그 기물들을 직접 보고야 사실임을 믿었다.' 하였다. 또 '연감유함'에 '분서는 그 무게가 만 근이나 되는 것도 있다.' 했는데 분서가 지금에도 있다. 그 몸뚱이는 코끼리와 같고 어금니는 상아와 같은데 약간 노랗기만 할 뿐이다.' 하였으니 이는 다 고서와 부합되는 말이다. '청일퉁지'에 '분서는 악라사국 해안 지방에서 생산되며 서령의 이름으로는 마문탁와라 하는데 그 고기의 성분이 매우 차갑지만 먹으면 따뜻해진다' 하였다.").
왜 매머드의 화석을 보고 땅속에 굴을 파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제 생각에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쨰, 시베리아에 지금은 코끼리가 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코끼리라는 동물을 상상할 수 없었겠죠. 그러니 코끼리의 뼈 구조에 대해서도 몰랐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끼리의 친척인 매머드를 보고도 코끼리와 비슷한 동물일 거란 상상은 전혀 할 수 없었겠지요. 이는 코끼리의 두개골을 보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를 상상하던 과거 사람들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다시 매머드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보통 매머드 하면 추운 빙하기 시절에 살았던 생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실 매머드는 빙하기가 오기 훨씬 전부터 화석기록이 등장합니다. 매머드의 화석 기록은 마이오세 시기부터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지구는 슬슬 오늘날과 비슷해지는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죠. 가장 오래된 매머드의 화석은 미국 네브라스카의 셰브라 컨츄리(Sheridan County)의 니오브라라 강 근처에서 발견이 되었는데, 그 연대가 대략 2천 3백만 ~ 5백만 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처음 발견된 화석은 아시아 코끼리의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후속 연구에서 콜롬비아 매머드의 것으로 밝혀졌지요.
매머드 역시 다른 친척들처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분포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털매머드는 캐나다, 알래스카, 유럽에서 널리 분포하며 살았으며, 털이 없는 콜롬비아 매머드는 북미지역에서 주로 분포하였습니다. 그 외에 이들도 아프리카에서도 화석이 일부 발견되기도 하였죠.
우리나라에서도 매머드의 화석이 발견된 기록이 있습니다. 서해 상왕등도라는 섬에서 2012년에 매머드의 어금니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비록 어금니 일부였지만, 이 화석은 매머드의 동아시아 분포도를 알아내는 데 참고하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매머드 하면 우리는 오늘날 코끼리보다 더 길고 멋지게 휜 상아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모든 매머드가 다 그렇게 멋진 상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수컷에게 주로 그런 상아가 발견디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부분의 매머드 화석은 주로 수컷의 것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매머드의 화석 70%가 수컷의 것이죠. 왜일까요?
오늘날 코끼리들의 무리를 보면 주로 나이 든 암컷이 무리를 이끕니다. 수컷의 경우엔 어릴 땐 무리와 함께 살지만, 다 자라게 되면 무리에서 나와서 홀로 살거나 수컷끼리만 어울려서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런 습성은 매머드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나이 든 암컷이 이끄는 무리는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동시에 얼어붙어서 자칫 빠질 수 있는 호수 등 여러 위험 요소를 피하기 쉽습니다. 지도자가 서식지를 오랜 시간 살면서 보고 배운 경험 덕분이지요. 그러나 수컷의 경우엔 활동 범위가 더 넓고 홀로 살거나 또는 다른 수컷들과 어울리는 습성 때문에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빠져 죽는 경우가 자주 있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매머드는 수컷이 화석이 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매머드가 멸종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기 어렵습니다. 매머드의 멸종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좀 있는데, 유럽과 북미 지역의 매머드는 대략 1만 년~1만 2천 년 전 즈음에 멸종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알래스카의 세인트 폴 섬에서는 기원전 3750 년 즈음 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러시아의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브란겔랴섬에서는 무려 기원전 2천 년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이죠 (이집트 피라미드가 대략 기원전 5천년 전에 건축되었으니까, 피라미드가 건축될 때 매머드는 살아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대체 매머드는 왜 멸종하게 된 걸까요? 매머드가 멸종할 즈음에 두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기후의 변화로 인해서 빙하가 녹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과 인류의 사냥이라는 점이죠. 매머드는 본래 빙하기에 완벽히 적응한 동물이었습니다. 매머드에게 좋은 환경은 매체에서 보이는 것처럼 얼음 지대가 아니라 넓은 초원이 펼쳐진 평야지대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코끼리도 주로 초원지대에서 서식하지요.). 빙하기 시기에 많은 물이 얼어붙으면서 물의 순황 (담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 물이 증발하여 비가 내리고 다시 담수를 만드는 순환)에 상당한 지장을 주었습니다, 이 결과 지구는 상당히 건조한 기후를 띄게 되었죠. 오늘날 울창한 숲이 있는 아마존 역시 강수량이 상당히 적어서 매우 건조하였습니다. 건조한 기후일수록 울창한 숲보다는 더 적응 양의 물로도 살아갈 수 있는 키 작은 식물, 그리고 그 식물로 이루어진 초원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빙하기 시기에는 추운 기후로 인해서 지구에는 울창한 숲보다는 넓은 초원지대가 주로 펼쳐졌습니다. 매머드에겐 딱 좋은 환경이었죠. 그런데 빙하기가 끝나면서 얼어붙은 물이 다시 흐르게 되었고, 그 결과 울창한 숲이 다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매머드에겐 점차 좋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어 간 셈이죠.
또 다른 가설인 인류의 사냥 역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가설입니다. 인류에게 매머드는 분명 어마어마한 존재였을 겁니다. 막대한 양의 고기를 구할수 있으며, 동시에 뼈는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쓸 수 있었죠. 특히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매머드의 뼈가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무려 매머드 60마리를 잡아서 나온 뼈로 만든 집도 있을 정도이죠! 따라서 많은 수의 매머드가 인류에게 사냥당했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대형 동물들은 출산율도 매우 낮은 편임으로 대규모 사냥에는 매우 취약한 구조를 하고 있기에 더욱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아직 매머드의 멸종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최근까지 살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지금은 볼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3. 코끼리의 등장
매머드, 곰포테리움, 마스토돈, 스테고돈등 여러 거대한 친척들이 등장할 때 오늘날 코끼리 역시 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최근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코끼리의 화석기록은 그리 풍부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지는 않죠.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현생 코끼리의 화석은 대략 1천 1백만 년에서 5백만 년 사이에 살았던 아프리카 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의 화석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나마콸란트라는 지역에서 코끼리의 이빨의 일부가 발견되었죠. 현재 아프리카코끼리와 같은 록소돈타속(Loxodonta)에 속하는 코끼리의 화석으로, 현생 종인지 아니면 멸종한 다른 종인지는 알수 없지만 최소한 현생 코끼리와 상당히 가까운 종의 가장 오래된 화석임은 분명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외에 아프리카코끼리의 화석은 알제리, 에티오피아, 콩고 등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아시아 코끼리는 어떨까요? 오늘날 스리랑카, 보르네오, 인도 등에서 서식하는 아시아 코끼리는 화석기록을 보면 중국과 일본에서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고대 중국의 유물에는 코끼리와 관련된 유물이 존재하기도 하지요. 가장 오래된 아시아 코끼리의 화석기록은 아프리카 코끼리와 비슷한 시기에 태국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때 아시아 코끼리는 아프리카에도 진출하였다고 판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알제리, 이집트, 케냐,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엘레파스속에 속하는 코끼리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그 화석들은 친척인 팔라에오록소돈이라는 동물의 것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코끼리와 장비목의 진화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이들은 대략 6천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개와 비슷한 크기의 포유류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륙의 이동 및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몸집이 거대해졌고, 동시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의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도 하였죠. 그러다가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다수가 사라졌고 현재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코끼리는 모두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코끼리의 상아를 노리고 많은 포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코끼리는 현재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들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나뭇잎을 따먹고 나무를 부수기도 하기 때문이죠. 무시무시하지만 이런 활동 덕분에 초원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이 코끼리에게 서식지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이 밟고 배설물을 배설한 토양은 매우 비옥해져서 나무나 식물이 잘 자랄수 있다고 합니다. 즉, 코끼리는 아프리카 생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크고 멋질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코끼리. 앞으로도 다른 친척들처럼 멸종하지 말고 인류와 공존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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