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1. 코끼리의 먼 친척
분류학적으로 보면 장비목 중에서 현재 코끼리로 가는 과정에 속하는 화석들은 대략 3천만 년 전, 그러니까 에오세 후기에서 올리고세 시기가 시작될 때 즈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중 첫 발견은 아직 모에리테리움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아가 더 발달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1986년에 처음 발견된 이 동물은 누미도테리움 코호렌세 (Numidotherium koholense)라는 학명이 붙여졌습니다. 누미도테리움은 이전 글에서 본 원시적인 장비목과는 달리 원시코끼리아목에 속합니다. 이들은 코끼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먼 친척이죠.
3. 본격적으로 거대해지다.
지구가 올리고세라고 하는 시기에서 마이오세라고 하는 시기, 그러니까 대략 3천만 년 전부터 장비목의 역사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몸이 거대해진 것이었죠. 화석기록에서 본격적으로 거대해진 장비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3천 2백만 년 전에서 2천 7백만 년 전 즈음에 살았던 바리테리움 그라베(Barytherium grave)를 시작으로 장비목은 키가 2m를 넘게 되었습니다.
마이오세 시기에 살았던 거대한 장비목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아마 데이노테리움 (Deinotherium)일 겁니다. 인류의 먼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도 함께 아프리카에서 공존하였던 이 동물은 무척 거대했습니다. 키만 해도 무려 기린 만한 키였죠. 그러나 데이노테리움은 오늘날 코끼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상아를 가지고 있는데, 턱 아래쪽으로 아치 형태로 휘어지는 형태의 상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아를 어디에 썼는지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땅속에 있는 식물 뿌리를 캘 떄, 혹은 나무껍질을 벗길떄 사용하였으리라 추측할수만 있죠.
3. 왜 갑자기 거대해진 것일까?
그런데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왜 장비목은 갑자기 거대해져서 오늘날까지 육지에 사는 거대한 동물로 남게 된것일까요? 분명 처음에는 조그마한 동물이었는데 말이죠. 이는 오랜 시간동안 미스터리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장비목의 두뇌에 대한 연구 끝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죠. 그 답은 마이오세 시기에 있었던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정확히는 2천 6백만 년 전 즈음부터 있었던 기후변화와 대륙의 이동이죠.
2천 6백만 년 전에 지구는 올리고세에서 마이오세라고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지구는 슬슬 오늘날이랑 비슷해지고 있었지요. 그동안 얼음이 없던 남극 대륙에 얼음이 얼어붙어 가는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즉, 추워지기 시작한 거죠. 극지방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내리는 비의 양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죠.
2천만 년 전에 접어들면서 아프리카 대륙에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륙의 이동으로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게 된 것이죠. 오늘날 오세아니아처럼 섬과 비슷하게 홀로 떨어져 있던 아프리카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었습니다. 두 거대한 대륙이 연결되면서 서남아시아 지역 일대에 살던 동물들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본래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던 코끼리의 조상들은 이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고, 그 결과 몸집과 두뇌의 크기가 거대해지는 길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즉, 환경의 변화 속에서 멸종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도록 선택한 결과가 바로 몸집과 두뇌의 거대화였지요.
두뇌가 커지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짐작해보면, 몇 가지 이점은 줄 수 있었을 듯 합니다. 어쩌면 기후의 변화로 인해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더 잘 구분해야 하거나 (기후 변화로 인한 식물상의 변화로 인해서 먹을 수 없는 식물도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먹이를 찾아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거나 등등... 두뇌가 커지는 방향이 어떤 식으로든 이점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코끼리는 매우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능이 향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몸집이 커지면서 두뇌도 단순히 같이 커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두뇌의 크기가 커진 것은 코끼리의 조상과 먼 친척들이 단순히 몸집이 커지는 과정으로 진화하면서 생긴 부산물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새로 유입된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집이 커졌고, 그 과정에서 두뇌가 커진 것일 수도 있지요. 아직 코끼리가 거대해진 것에 대해선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4. 바깥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연결되면서 장비목은 또 다른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던 장비목이 아시아 대륙과 연결이 되자,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그 시작은 데이노테리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시코끼리아목은 데이노테리움 이후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죠. 어? 그러면 데이노테리움이 속한 원시 코끼리아목 외에 다른 분류가 지금까지 존재하였다는 걸까요? 네 맞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코끼리가 속해있는 분류군인 코끼리아목을 살펴보겠습니다.
(계속)
연구 및 자료 출처-
Benoit, J., Legendre, L. J., Tabuce, R., Obada, T., Mararescul, V., & Manger, P. (2019). Brain evolution in proboscidea (Mammalia, Afrotheria) across the Cenozoic. Scientific reports, 9(1), 1-8.
Shoshani, J., Walter, R. C., Abraha, M., Berhe, S., Tassy, P., Sanders, W. J., ... & Zinner, D. (2006). A proboscidean from the late Oligocene of Eritrea, a “missing link” between early Elephantiformes and Elephantimorpha, and biogeographic implica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3(46), 17296-17301.
https://en.wikipedia.org/wiki/Deinothe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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