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 이야기

공룡인가? 아닌가? 의문의 분류군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5. 6. 7. 03:44

 공룡! 전 세계의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고생물이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고생물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보면 공룡 못지않게 매력적이거나 공룡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았던, 심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생명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룡은 수많은 고생물 중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고생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신 적은 없으셨나요? 과연 이 공룡은 언제부터 지구에서 살았을까요? 언제 지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을까요? 현재까지 발견된 고생물 중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는 가장 오래된 공룡은 에오랍토르(Eoraptor)라고 하는 공룡입니다. 이 공룡은 지금으로부터 2억 3천3백만 년 전 즈음에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서 살았습니다. 공룡 내에서 이 공룡이 속한 분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으나 최소한 원시적인 공룡은 맞다고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오랍토르 이전에 살았던 분류군 중에서도 '과연 얘네가 공룡이 맞을까?'하는 분류군이 있습니다. 본래 이들은 공룡이 아닌 다른 분류군에 속한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 공룡이 맞다고 보는 연구가 여러번 발표되면서 논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논란의 분류군인 실레사우루스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논란의 분류군인 실레사우루스과를 대표하는 고생물 실레사우루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ilesaurus

 
(1). 헤테로돈토사우루스와 마라수쿠스보다 실레사우루스에 더 가까운 지배파충류
 실레사우루스는 2003년에 학계에 보고된 고생물입니다. 폴란드 남서부에 있는 크라시에요프(Krasiejów)라는 지역에서 발견되었죠. 처음 발견될 당시 이 생물을 연구하였던 폴란드의 예지 자이크 (Jerzy Dzik)박사는 실레사우루스를 공룡과 공룡의 가까운 친척을 포함하는 분류군인 공룡형류로 분류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공룡은 분류학적으로 지배파충류 내에서 공룡형류(Dinosauriform), 그 내에서 공룡상목(Dinosauria)이라는 분류군에 속한 생물을 뜻합니다. 실레사우루스는 공룡형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공룡상목에 속하지는 않은 것이죠. 그러니 공룡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입니다. 2010년에 학자들은 '헤테로돈토사우루스와 마라수쿠스보다 실레사우루스에 더 가까운 지배파충류'라는 뜻으로 실레사우루스과라는 분류군을 만들었습니다.

실레사우루스의 화석 스케치. 출처- Dzik (2003).

 
실레사우루스과를 뜻하는 '헤테로돈토사우루스와 마라수쿠스보다 실레사우루스에 더 가까운 지배파충류'라는 정의는 대체 무슨 뜻일까요? 분류학적으로 보자면 헤테로돈토사우루스는 공룡 그 자체이며, 마라수쿠스는 그보다 더 큰 분류군인 공룡형류라는 분류군에 속해있습니다. 실레사우루스는 공룡형류 안에서 공룡을 포함하는 분류군인 드라코호르스(Dracohors)안에 속해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공룡 그 자체는 아니지만 다른 지배파충류보다는 공룡에 더 가까운 단계'에 속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실레사우루스는 다른 지배파충류보다도 공룡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다음 단락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 공룡일까 아니면 공룡의 친척일까?
 공룡은 크게 두 개의 분류군으로 나누어집니다. 용반목과 조반목으로 나누어지죠. 이 차이는 가장 크게는 골반의 형태에서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골반의 형태 이외에도  이빨이나 턱의 형태에서도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용반목 공룡과는 달리 조반목 공룡의 경우 전반적으로 이빨이 나뭇잎이나 삼각형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래턱에서 이빨이 존재하는 턱의 앞부분에 전치골(predentary)이라고 하는 특수한 구조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실레사우루스과에게서도 이 특징이 관측된다는 점입니다. 실레사우루스과에 속한 생물들의 이빨도 조반목 공룡의 이빨처럼 나뭇잎이나 삼각형처럼 생겼습니다. 또한 전치골이 관측되기도 하죠.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실레사우루스과가 공룡의 친척이 아니라 실은 공룡의 일부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원시적인 조반목 공룡 레소토사우루스. 이빨의 형태가 나뭇잎과 비슷하다. 출처- https://www.wikiwand.com/en/articles/Lesothosaurus

 

조반목 공룡인 트리케라톱스의 전치골. 출처- https://museum.wa.gov.au/explore/dinosaur-discovery/dinosaur-types

 

실레사우루스의 두개골. 실레사우루스에게는 조반목 공룡에서 보이는 전치골이 있다. 또한 이빨의 형태가 나뭇잎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는 조반목 공룡뿐 아니라 실레사우루스과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출처- https://www.reptileevolution.com/silesaurus.htm

 
 이런 이야기는 2013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2013년에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교의 맥스 랑헤르(Max C. Langer)박사와 리오그란데두술 동식물재단(Fundação Zoobotânica do Rio Grande do Sul)의 호르헤 페리골로(Jorge Ferigolo)박사는 브라질에서 발견된 사키사우루스 아구도엔시스(Sacisaurus agudoensis)라는 고생물의 분류학적 위치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본래 이 생물은 원시적인 조반목 공룡에 속한 것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랑헤르 박사와 페리골로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이 생물이 실레사우루스과에 속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키사우루스에겐 뚫리지 않은 흡반(골반에서 다리뼈가 들어가는 구멍. 공룡은 이 구멍이 완전히 뚫려있다.)과 같은 일반적인 공룡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사키사우루스에게는 여전히 조반목 공룡의 특징인 나뭇잎 형태의 이빨이라던가 전치골(predentary)같은 특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사키사우루스와 다른 실레사우루스과의 계통을 다른 공룡과 비교를 해보니 실레사우루스과가 공룡, 정확히 말해서 조반목 공룡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이 결과가 맞다면 실레사우루스과의 등장 시기인 2억 4천만 년 전으로 공룡의 출현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이죠.
 
 

사키사우루스의 전치골. 조반목 공룡의 특징이다. Ferigolo and Langer (2007).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레사우루스과에서 조반목 공룡의 특징이 보이는 것은 맞지만 또한 동시에 공룡이라 보기 어려운 특징도 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하였던 열리지 않은 흡반이라던가 하는 특징들이죠. 그 외에도 골반뼈에 융합된 척추뼈가 많아야 2개뿐(공룡은 3개가 융합되어 있습니다.)이라는 점등 공룡과는 다른 특징이 보인다는 것도 공룡이라고 하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실레사우루스과에서 보이는 공룡과의 유사한 해부학적 특징은 수렴진화, 그러니까 유사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직 학계에서 실레사우루스과가 진짜 공룡인가 아닌가에 대해선 확답이 내려지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사실 이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화석의 부족이지요. 실레사우루스과의 생물 상당수가 전신의 극히 일부만 화석으로 발견되었기에 이들의 분류에 대한 논쟁이 쉽게 종결되지 않고 있는것입니다.
 어느 쪽이 맞던 간에 실레사우루스과는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동물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들이 처음 출현하던 시기의 환경은 아열대성 기후에 습한환경과 건조한 환경이 교차하던 환경이었습니다. 이 동물들은 그런 환경에서 악어악어의 친척인 위악류들, 그리고 포유류의 먼 조상뻘인 동물인 단궁류들과 공존하였습니다. 화석기록을 보면 트라이아스기 말기에 있었던 대 폭우 사건과 그로 인한 공룡의 번성(보러 가기)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동물들이 대규모로 멸종하고 그 빈자리를 공룡이 채워나가던 시기에도 계속 살아남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공룡이 완전히 지구를 지배하고 난 이후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과연 이 의문의 파충류들은 조반목 공룡일까요? 아니면 공룡의 친척일까요? 이들에 대한 후속 연구가 어떤것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Dzik, J. (2003). A beaked herbivorous archosaur with dinosaur affinities from the early Late Triassic of Poland.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23(3), 556-574.
 
Ferigolo, J., & Langer, M. C. (2007). A Late Triassic dinosauriform from south Brazil and the origin of the ornithischian predentary bone. Historical Biology19(1), 23-33.
 
Langer, M. C., Ezcurra, M. D., Bittencourt, J. S., & Novas, F. E. (2010). The origin and early evolution of dinosaurs. Biological Reviews85(1), 55-110.
 
Langer, M. C., & Ferigolo, J. (2013). The Late Triassic dinosauromorph Sacisaurus agudoensis (Caturrita Formation; Rio Grande do Sul, Brazil): anatomy and affinities.
 
Müller, R. T., & Garcia, M. S. (2020). A paraphyletic ‘Silesauridae'as an alternative hypothesis for the initial radiation of ornithischian dinosaurs. Biology letters16(8), 20200417.
 
Müller, R. T. (2025). A new “silesaurid” from the oldest dinosauromorph-bearing beds of South America provides insights into the early evolution of bird-line archosaurs. Gondwana Research137, 13-28.
 
Nesbitt, S. J., Sidor, C. A., Irmis, R. B., Angielczyk, K. D., Smith, R. M., & Tsuji, L. A. (2010). Ecologically distinct dinosaurian sister group shows early diversification of Ornithodira. Nature464(7285), 95-98.
 
Norman, D. B., Baron, M. G., Garcia, M. S., & Müller, R. T. (2022). Taxonomic, palaeobiological and evolutionary implications of a phylogenetic hypothesis for Ornithischia (Archosauria: Dinosauria).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196(4), 1273-1309.
 
Novas, F. E., Agnolin, F. L., Ezcurra, M. D., Müller, R. T., Martinelli, A. G., & Langer, M. C. (2021). Review of the fossil record of early dinosaurs from South America, and its phylogenetic implications. Journal of South American Earth Sciences110, 103341.
 
Paes Neto, V. D., Pretto, F. A., Martinelli, A. G., Battista, F., Garcia, M., Müller, R. T., ... & Kellner, A. W. (2025). Continuous presence of dinosauromorphs in South America throughout the Middle to the Late Triassic. Scientific Reports15(1),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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