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호랑이, 코끼리, 얼룩말... 세상에는 많은 동물이 살고 있으며 그 동물들의 이름은 발음하기 매우 쉽습니다.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고 보통 2~3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공룡의 경우에는 이름이 매우 길고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공룡이 ~~'사우루스'로 끝나고, 앞에 붙은 이름도 발음하기 어렵거나 생소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공룡 이름을 아무거나 떠올려 봅시다(아마 대부분 티라노사우루스를 생각하실겁니다.). 생각나는 게 없다면 인터넷에서 공룡 이름을 검색해보거나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를 두었다면 아이가 읽는 공룡 책을 펼쳐봐도 좋습니다. 공룡 이름을 살펴봅시다. 매우 깁니다. 발음도 어렵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에이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워? 사자, 호랑이, 말처럼 쉽게 이름 붙이면 더 편하고 좋잖아!' 맞습니다. 이름이 편하면 읽는 사람도 좋지요. 고생물 글을 쓰는 저도 가끔 공룡 이름이 헷갈리거나 기억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1. 공룡의 이름이 어려운 이유 학명과 라틴어
그러면 누가, 왜 공룡의 이름을 짓는 걸까요? 바로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지요. 그러면 그들은 왜 공룡의 이름을 어렵게 짓는 걸까요? 그들은 너무 머리가 좋아서 어려운 이름도 척척 외우고 아무렇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일까요?
사실 엄밀히 말해서 학자들이 공룡의 이름만 특별히 어렵게 짓는건 아닙니다. 다른 생물들의 이름도 어렵게 짓지요. 다음 이름들을 살펴봅시다.
'카니스 루푸스 파밀라리스(Canis lupus familiaris)' '록소돈타 아프리카나(Loxodonta africana)' '판테라 티그리스 알타이카(Panthera tigris altaica)'
이건 무슨 공룡의 이름일까요? 아마 공룡책을 열심히 찾아봐도 안 나올겁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공룡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모두 동물, 그것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동물들의 이름입니다. 첫번째 카니스 루푸스 파밀라리스는 '개' 록록소돈타 아프리카나는 '코끼리', '판테라 티그리스'는 시베리아 호랑이(한국호랑이)를 뜻하지요. '아니 왜 쉬운 이름을 두고 저런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영어도 아닌거같고 무슨 언어야? 설마 학자들만의 엘리트주의를 나타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 이름들은 라틴어입니다. 라틴어는 아마 천주교를 믿으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할법한 언어이지요. 왜냐하면 바티칸에서는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녀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니면 알려주세요.). 라틴어는 지금 서양의 언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들의 기반이 되는 언어이자 알파벳을 사용한 최초의 언어이지요. 그러면 왜 라틴어를 사용한 이름을 사용하는 걸까요?
현재 전 세계의 공용어는 영어입니다. 영어를 할 줄 알면 해외에 나가서 상대방이 영어를 못 하지 않는 이상 의사소통이 가능하지요. 영어가 이런 위치를 차지한 것은 대략 20세기에 접어들어서입니다. 대영제국이 전 세계 여기저기에 식민지를 만들고, 영국에 이어서 미국이 초강대국에 등극하면서였지요. 그러나 영어가 처음부터 이런 위치에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본래 영어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는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 미국에서만 사용되었던 언어였지요. 즉, 공용어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언어가 공용어였느냐, 유럽의 경우에는 라틴어였습니다. 로마제국이 망하고 난 후에도 라틴어는 유럽의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많은 서양권 국가에서는 라틴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지요. 바로 이 라틴어를 유럽에서 공용어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라틴어를 이용한 이름이 공용으로 사용된 것이지요.
라틴어를 이용한 이름을 학명이라고 합니다. 학명이란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건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였던 카를 폰 린네가 분류법(학교에서 한 번쯤 배웠을 종, 속, 과, 목, 강, 문, 계 개념을 뜻합니다.)을 만들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류법을 만들면서 린네는 그 당시 유럽의 공용어였던 라틴어를 사용하였지요. 공용어를 쓴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든 생물학자들에게 통용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이용한 학명 작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에 국경이란 없기 때문이죠. 이 전통이 지금도 쭉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도 학명은 라틴어를 이용한 학명을 이용하게 된 것이지요. 공룡의 이름 역시 이 라틴어를 이용한 학명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라틴어와 상관없는 한국어를 쓰는 우리에겐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지요.
2. 학명은 어떻게 지을수 있을까?
학명은 보통 짓는 학자가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티라노사우루스를 써보면 Tyrannosaurus입니다. tyranno는 폭군, saurus는 도마뱀을 뜻하지요. 즉, 폭군과 같은 무시무시한 공룡이었으리라 생각되어서 폭군을 뜻하는 티라노, 도마뱀을 뜻하는(왜 도마뱀이 들어가는지는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사우루스를 합해서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다른 학자의 이름을 바보 xx라고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찾아보니 헤어진 전 애인의 이름을 학명으로 붙인 학자도 있었다는군요.). 그 외에 자신의 은사님이나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학자의 이름을 학명에 붙여서 그분의 명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면 끝에 i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본래 이름이 민수(minsu)라면 학명에서는 minsui라고 써야됩니다. 다만 그 이름이 여성의 이름인 경우에는 i가 아니고 ae를 붙입니다. 이름이 수민(Sumin)이면 suminae로 쓰지요. 이런식으로 붙여진 학명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인류 역사 속에서 계속 사용이 됩니다.
3. 학명이 인정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
그렇다면 어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새로 붙여진 학명이 사용되지 않게 될까요? 우선 기존에 이미 동일하게 사용되는 학명이 있다면 그 이름을 또 쓸 수 없습니다. 즉, 이미 A라는 학명을 사용하고 있는 생물이 있다면 다른 생물에겐 A라는 학명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에 관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1983년 우리나라에서 목이 긴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미국에서 또 목 긴 공룡이 발견되었고 발견한 미국의 학자는 자신이 발견한 공룡에게 울트라사우루스라는 학명을 사용하여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한국에서 울트라사우루스라는 학명이 사용되고 있어서 울트라사우루스를 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자는 울트라사우루스를 울트라사우로스(Ultrasauros)로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새로운 생물인 줄 알고 새로운 학명을 부여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발견된 생물과 같은 생물이라면 어떨까요? 이럴 경우에 기존의 학명을 따라가고 새로 붙여진 학명은 이명으로 취급되어서 사용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울트라사우로스가 이 경우에 속하는데, 후속 연구에서 울트라사우로스의 화석은 다른 목 긴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와 수페르사우루스의 화석이 섞인 키메라(다른 두 종의 화석이 섞인 것)였다는것이 발견되어서 울트라사우로스는 이명으로 취급되어서 더 이상 연구에서 사용되지 않게 되었지요.
다만 요즘은 시대가 변하고 있어서인지 라틴어가 아닌 언어도 인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학자들은 중국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에 라틴어가 아닌 중국어 학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인롱, 메이, 이, 티안유롱등이 그 예시이지요. 그래도 되도록 라틴어 사용이 권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ps.제가 봐온 공룡 학명 중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학명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목 긴 공룡의 이름으로 음냐마와음투카 음오요왐키아 (Mnyamawamtuka moyowamkia) 였던거 같습니다. 스와힐리어를 이용한 학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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