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 이야기

기린의 목. 그 과거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1. 12. 29. 06:17

 진화생물학을 배울 때 누구나 한가지 거쳐 가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이죠. 모두 아실만한 다윈 vs 라마르크, 다시 말하자면 자연선택 vs 용불용설입니다.

용불용설과 자연선택. 출처- https://www.bu.edu/bhr/biology-evolutionary-theory-theories-of-jean-baptiste-lamarck-and-of-charles-darwin-illustration/

 다윈, 라마르크 둘 다 진화생물학자입니다. 하지만 다윈은 긴 목을 지닌 기린만 살아남고 짧은 목을 지닌 기린은 멸종하였다는 자연선택, 라마르크는 기린이 목을 쓰다 보니 목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용불용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분은 학교에서 생물학 시간에 이 두 가지 과학적인 가설을 배우는 예시로 기린을 자주 봤을 겁니다. 그러면 실제 기린의 목 진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갔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기린의 목 진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앙골라 기린. 기린은 언제부터 목이 길었을까?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golan_giraffe_(Giraffa_camelopardalis_angolensis)_males.jpg

1. 기린의 화석

 우선 기린의 기원부터 살펴봅시다. 기린, 그리고 기린의 옛 친척들은 대략 2천 3백만 년 전 즈음에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석기록이 그 시기부터 존재하였기 때문이죠. 오늘날 살아있는 기린의 친척으로는 오카피가 있습니다. 오카피 외에도 많은 멸종한 친척들이 과거에 존재하였습니다. 기린이 속하는 기린과(Giraffidae)에는 기린이 속하는 기린아과(Giraffinae), 오카피가 속하는 오카피아과(Okapiinae), 오래된 기린의 친척인 칸투메릭스아과(canthumerycinae), 기라포케릭스아과(giraffokerycinae), 보흘리니아아과(bohlininae), 팔라에오트라구스아과(palaeotraginae), 시바테리움아과(sivatheriinae)가 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동, 유럽, 심지어 아시아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기린의 옛 친척은 여기저기 꽤 넓은 지역에 걸쳐서 분포하였던 것이죠.

케냐에서 살았던 기린의 먼 조상 칸투메릭스아과의 칸투메릭스 시르텐시스 (Canthumeryx sirtensis)의 턱뼈. 출처-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canthumeryx-sirtensis-hamilton-1973/DAHmATQWXryENA
기라포케릭스아과의 기라포케릭스 (Giraffokeryx). 출처- https://dinopedia.fandom.com/wiki/Giraffokeryx
팔라에오트라구스아과의 팔라에오트라구스(Palaeotragus).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Palaeotragus
시바테리움아과의 시바테리움 (Sivatherium).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Sivatherium
보흘리니아아과의 보흘리니아(Bohlinia). 이들은 기린과에 속하는 분류군 중에서 기린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속한다. 출처-https://ideas.fandom.com/wiki/Bohlinia_(SciiFii)

 이중 독자분들의 눈에 제일 띄는 부류는 보흘리니아아과 일듯 합니다. 이들은 주로 유라시아 (중국, 이란,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차드에서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로 1천 1백만 년 전에서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이 동물들은 사실 아쉽게도 온전한 형태의 화석이 발견된 사례는 없습니다. 두개골 일부, 목뼈 일부, 다리뼈 일부만 발견되었죠. 하지만 목뼈와 다리뼈의 비율을 조사하여 다른 친척들과 비교한 결과, 보흘리니아는 긴 목과 긴 다리를 지닌, 오늘날 기린과 유사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기린은 언제 나타났을까요? 화석기록을 보면 우리가 아는 기린이 속하는 기린속 (Giraffa)은 대략 2천 3백만 년에서 3백만 년 전 즈음으로 추정되는 지층에서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케냐, 남아공, 에티오피아, 러시아, 몰도바, 인도 부근에서 화석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기린속의 화석들이 발견된 지층의 연대측정은 범위가 굉장히 넓기에 정확한 연대를 알기 쉽지 않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다만 몇몇 1천 2백만 년 전 ~1천 1백만 년 전 지층에서 오늘날 기린의 한 종류인 북부기린 (Giraffa camelopardalis), 그리고 멸종한 기린인 기라파 프리스킬라 (Giraffa priscilla)의 화석이 발견된 점을 미루어봤을 때, 대략  그 시기 즈음에 오늘날 기린이 나타난 듯합니다.

 

2. 기린의 목은 언제, 그리고 왜 길어졌을까?

 기린은 언제부터 목이 길었던 것일까요? 2015년에 기린의 긴 목의 발달 과정에 대해서 다룬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뉴욕 정골의과대학의 해부학과와 생체의학과의 공동 연구에서, 기린과에 속하는 분류군의 목뼈, 그중에서 3번째 목뼈를 조사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기린과에 속하는 원시적인 동물인 칸투메릭스 (1천 8백만 년 전 즈음) 때부터 목뼈가 길어지는 조짐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목뼈의 길이와 너비의 비율을 조사해본 결과 길이 비율이 더 높았던 것이죠.

 그런데 후에 가서, 그러니까 대략 1천 4백만 년 전에서 7백만 년 전에 나타난 기린과의 일부 분류군에서 이 비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오카피, 기라포케릭스, 시바테리움등등 몇몇 분류군의 목뼈가 굵어지고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목뼈의 비율에서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기린으로 가는 분류군은 다시 목뼈의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모테리움, 팔라에오트라구스등 기린과 오카피 중에서 기린에 가까운 분류군은 다시 길어지는 것입니다.

 

 즉, 3번째 목뼈를 통해서 분석한 기린의 과거 조상 및 친척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한 것입니다.

1). 가장 오래된 분류군인 칸투메릭스아과에서 목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프로드레모테리움, 킨투메릭스).

 

2). 기린의 조상 중 오카피로 진화하거나 가까운 분류군 '오카피아과 (오카피), 기라포테릭스아과 (기라포테릭스), 시바테리움아과 (시바테리움, 브라마테리움)은 목뼈가 다시 굵고 짧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3). 기린과 가까워지는 분류군 '팔라에오트라구스아과 (팔라에오트라구스, 사모테리움), 보흘라니아아과 (보흘라니아), 기린아과 (오늘날 기린)'은 다시 목뼈가 길어지고 가늘어지는 경향을 보이다가 긴 목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보흘라니아의 목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목뼈의 다른 부위를 통해서  가늠한 결과 보흘라니아 역시 길고 가늘어지는 목뼈를 지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린과의 3번째 목뼈의 패턴 그래프. (칸투메릭스아과- pe=>프로드레모테리움, Cs=>킨투메릭스)에서 목뼈가 길어지는 경향을 가진다, 오카피아과 (Oj=>오카피), 기라포테릭스아과 (Gp=>기라포테릭스), 시바테리움아과 Sg=>시바테리움, Bm=>브라마테리움)에서 목뼈가 굵고 짧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기린과 가까워지는 분류군인 팔라에오트라구스아과 (Sm=>사모테리움, Pr=>팔라에오트라구스), 보흘라니아아과 (Ba=>보흘라니아), 기린아과 (Gs, Gc=>오늘날 기린속) 출처- Danowitz et al., (2015).

 

 그러면 기린은 왜 목이 길어졌던 걸까요? 오늘날 기린의 모습을 보면 기린은 긴 목을 2가지 용도로 사용합니다. 1번째는 높은 나무에 있는 나뭇잎을 먹을 때 사용합니다. 다윈과 라마르크 둘 다 이쪽을 생각했었죠. 그리고 2번째 용도는,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성선택, 즉, 긴 목을 가진 개체일수록 이성의 눈길을 더 얻을 수 있기에 긴 목을 발달시키다 보니 긴 목을 가진 기린만 남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에 반박하는 연구도 존재합니다. 2009년에 남아공 프레토리아 대학교와 미국의 와이오밍 대학교의 공동 연구진은 수컷과 암컷의 목뼈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큰 차이가 없어 수컷이 암컷의 이목을 끌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2017년에는 먹이나 이성의 눈길을 얻는 것이 아닌 제3의 목적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미국 와이오밍의 와이오밍 대학교와 남아공의 프레토리아 대학교,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의 공동 연구진은 기린의 긴 목이 아프리카라는 더운 지역에서 체온조절과 연관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기린은 정면에서 보면 대형동물치고는 매우 가느다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몸 표면에 태양열이 닿는 면적이 작어서 더운 지방에서도 살 수 있다는 주장이죠. 다른 대형동물들과 체중과 신체의 질량은 비슷하지만 대신 가느다란 형태로 진화하여서 태양열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기린과 코끼리. 둘다 대형동물이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 적응하였다. 출처- https://pixabay.com/photos/giraffe-close-up-animal-mammal-3627613/ (기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ephant_(Loxodonta_Africana)_03.jpg (코끼리).

 어떤 이유로 긴 목을 발전 시켰든 간에, 기린의 긴 목은 긴 목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기 유리하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카피를 제외한 다른 기린과 중에서 목이 짧은 분류군은 멸종하였기 때문이죠. 즉, 긴 목을 지닌 기린은 그 자체로 자연선택의 좋은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ohlinia

 

https://en.wikipedia.org/wiki/Honanotherium

 

https://en.wikipedia.org/wiki/Giraffidae

 

https://www.wired.co.uk/article/why-do-giraffes-have-long-necks

 

https://www.sciencefocus.com/nature/why-do-giraffes-have-such-long-necks/

 

https://www.sciencealert.com/we-still-don-t-know-why-giraffes-have-long-necks-but-here-s-a-different-theory

 

Danowitz, M., Vasilyev, A., Kortlandt, V., & Solounias, N. (2015). Fossil evidence and stages of elongation of the Giraffa camelopardalis neck. Royal Society open science, 2(10), 150393.

 

Dagg, A. I. (2014). Giraffe: biology, behaviour and conserv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Mitchell, G., & Skinner, J. D. (2003). On the origin, evolution and phylogeny of giraffes Giraffa camelopardalis.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South Africa, 58(1), 51-73.

 

Mitchell, G., van Sittert, S., Roberts, D., & Mitchell, D. (2017). Body surface area and thermoregulation in giraffes. Journal of Arid Environments, 145, 35-4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