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 이야기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어린 시절의 로망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1. 10. 26. 08:38

(1). 어릴 적 추억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대략 초등학교 들어갈 때 즈음까지 자주 즐겨봤던 자연과학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교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책으로 '꾀돌이의 자연 탐험'이라는 책이었지요. 이 책은 그냥 읽는 책이 아니라 동본 된 카세트테이프를 같이 들으면서 읽는 책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은 일본의 베네세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에서 낸 줄무늬 호랑이 시마지로라는 애니메이션 기반의 교육책이더군요.). 총 15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제가 자라면서 어머니께서 다른 집에 주셨지만, 그 책의 내용은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납니다.

 이 시리즈에는 수많은 생물이 등장하였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생물을 뽑으라면 저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라는 두 곤충을 뽑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리즈에서 처음 그 두 곤충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때 이 두 곤충의 매력에 꽂혔었죠.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얼마 전까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간혹 기르곤 했습니다. 작년에 왕사슴벌레 수컷을 한 마리 길렀고, 장수풍뎅이는 대학교 2학년 때 길렀던 것이 마지막이었죠.  이 두 곤충은 지금도 많은 어린이들, 그리고 수집가들의 로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길렀던 왕사슴벌레. 출처-직접촬영

 그런데 어느덧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두 곤충,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언제 처음 지구상에 등장하였으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곤충의 관계와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의 관계와 기원

 사슴벌레, 그리고 장수풍뎅이는 곤충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예상할 수 있듯 딱정벌레의 한 종류입니다. 정확히는 딱정벌레목(Coleoptera)에 속하지요. 모든 곤충 중에서 가장 종수가 많은 부류가 바로 이 분류군입니다. 딱정벌레목은 크게 먹이에 따라서 고딱정벌레아목, 식균아목, 식충아목, 다식아목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중에서 다식아목은 이름 그대로 초식에서 육식까지 다양한 식성을 지닌 곤충들이 있지요. 다식아목에서 풍뎅이상과라는 분류군이 있습니다. 모든 풍뎅이 종류가 다 여기에 속하지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도 여기에 속합니다. 사슴벌레는 여기서 사슴벌레과 (Lucanidae), 장수풍뎅이는 풍뎅이과(Scarabaeidae)중에서 장수풍뎅이아과(Dynastinae)라는 분류군에 속합니다. 즉, 이들은 과 수준에서 갈라지는 관계에 속하지요.

 이 두 분류군은 언제 처음 출현하였을까요? 2019년에 딱정벌레의 기원에 대한 분자배열 연구 결과, 사슴벌레과는 쥐라기  후기 즉, 1억 6천만 년 전 즈음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장수풍뎅이의 경우, 해당 연구에서는 장수풍뎅이아과에 속하는 펜토돈 (Pentodon)이라는 장수풍뎅이를 기준으로 잡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서식하는 장수풍뎅이로, 둥글장수풍뎅이로 불리는 장수풍뎅이가 이 분류군에 속합니다.), 대략 5천만 년 전 즈음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 그러면 이 연대를 화석기록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3).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의 화석 기록

 사슴벌레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크게 원시사슴벌레아과(Aesalinae), 람프리마사슴벌레아과(Lampriminae), 사슴벌레아과(Lucaninae), 장수사슴벌레아과(Syndesinae)로 나누어지지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슴벌레 분류군은 원시사슴벌레아과입니다. 가장 오래된 원시사슴벌레의 화석기록은 1억 6천 6백만 년 전에 중국에서 살았던 주라에살루스 스타부스(Juraesalus atavus)라는 사슴벌레로, 이 곤충화석을 통해서 풍뎅이류의 중국 진출이 최소한 1억 6천 6백만 년 전에는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위에서 나온 분자배열 연구 결과와도 비슷합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슴벌레 주라에살루스 스타부스의 화석. Nikolajev (2011)

 중국에서는 쥐라기 이후 1억 2천만 년 전인 백악기 시기의 사슴벌레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 외에도 공룡이 살던 시절 사슴벌레의 화석은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미얀마에서 발견된 9천 9백만 년 전 즈음에 만들어진 호박 속에 보존된 사슴벌레의 화석도 있었죠.

프로토니카구스 타니 (Protonicagus tani). 미얀마에서 발견된 호박속에 보존되어 있는 사슴벌레의 화석이다. 출처- Cai & Hurang (2017)

 공룡시대 이후에 사슴벌레의 화석은 아시아를 넘어서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밌는 점은 공룡시대 때는 사슴벌레의 화석이 아시아에서 발견되었지만, 반대로 공룡시대 이후엔 아시아에서는 화석기록이 부재하다는 점이죠. 공룡시대 이후에는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주로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상당수가 사진을 포함하지 않거나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발견되는 호박에서 사슴벌레의 화석이 발견된 사례도 있는데, 지금도 도미니카 공화국에 서식하는 사슴벌레와 같은 분류군의 것이었죠. 이들이 직접적인 조상-후손 관계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말이죠.

신데수스 암베리쿠스 (Syndesus ambericus).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발견된 호박속에 보존된 사슴벌레의 화석이다. 출처- Woodruff (2009)
신데수스 코르누투스 (Syndesus cornutus).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서식하는 사슴벌레이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simongrovetmag/24496512629

 그러면 장수풍뎅이의 경우는 어떨까요? 분자 배열 연구 결과처럼, 장수풍뎅이의 화석기록은 공룡시대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장수풍뎅이의 화석은 미국 오리건주의 클라르노 층(Clarno Formation)에서 발견된 4천 8백만 년 전 즈음에 살았던 오릭토안티쿠스 보레알리스(Oryctoantiquus borealis)라는 장수풍뎅이의 화석입니다. 이 곤충은 몸 전체는 아니고 하반신 일부만 발견되었지요. 오릭토안티쿠스 이후의 장수풍뎅이의 화석은 영국, 미국, 독일, 그리고 탄자니와와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장수풍뎅이는 10만 년 전에 살았던 장수풍뎅이로, 키클로케팔라 시그나티콜리스(Cyclocephala signaticollis)와 압데루스긴뿔장수풍뎅이(Diloboderus abderus)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장수풍뎅이지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장수풍뎅이 오릭토안티쿠스 보레알리스 ( Oryctoantiquus borealis ). 출처-Ratcliffe et al (2005).
3천 8백만 년 전 영국에서 살았던 둥글장수풍뎅이 (Pentodon dorcus)의 화석. 출처- Kirejtshuk et al (2019).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장수풍뎅이 칼키토리크테스 마그니피쿠스 (Calcitoryctes magnificus). 출처- Krell (2011).

 

키클로케팔라 시그나티콜리스( Cyclocephala signaticollis)-좌-와 압데루스긴뿔장수풍뎅이 (Diloboderus abderus)-우-. 위는 화석, 아래는 현재 살아있는 곤충의 모습이다. 출처- 화석: Ramirez & Alonso (2016). 현생 곤충: https://www.flickr.com/photos/69610519@N08/15858051438,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iloboderus_abderus_(male).JPG

 어린 시절의 추억인 두 곤충. 앞으로도 이 두 곤충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연구 출처-

 

Cai, C., Yin, Z., Liu, Y., & Huang, D. (2017). Protonicagus tani gen. et sp. nov., the first stag beetles from Upper Cretaceous Burmese amber (Coleoptera: Lucanidae: Aesalinae: Nicagini). Cretaceous Research, 78, 109-112.

 

McKenna, D. D., Shin, S., Ahrens, D., Balke, M., Beza-Beza, C., Clarke, D. J., ... & Beutel, R. G. (2019). The evolution and genomic basis of beetle diversit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6(49), 24729-24737.

 

Nikolajev, G. V. (2011). STAG BEETLES FROM THE MESOZOIC OF INNERMONGOLIA, CHINA (SCARABAEOIDEA: LUCANIDAE).

 

Ramirez, L. C., & Alonso, C. P. (2016). Two late Pleistocene members of the white-grub complex, one of the most destructive insect pests of turfgrass. Revista Brasileira de Paleontologia, 19, 531-536.

 

Ratcliffe, B. C., Smith, D. M., & Erwin, D. (2005). Oryctoantiquus borealis, new genus and species from the Eocene of Oregon, USA, the world's oldest fossil dynastine and largest fossil scarabaeid (Coleoptera: Scarabaeidae: Dynastinae). The Coleopterists Bulletin, 59(1), 127-135.

 

Kirejtshuk, A. G., Ponomarenko, A. G., Kurochkin, A. S., Alexeev, A. V., Gratshev, V. G., Solodovnikov, A. Y., ... & Soriano, C. (2019). The beetle (Coleoptera) fauna of the Insect Limestone (late Eocene), Isle of Wight, southern England. Earth and Environmental Science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Edinburgh, 110(3-4), 405-492.

 

Krell, F. T., (2011). Scarabaeidae, in Beetles (Insecta: Coleoptera). Paleontology and Geology of Laetoli: Human Evolution in Context. Volume 2: Fossil Hominins and the Associated Fauna 535-548

 

Woodruff, R. E. (2009). A new fossil species of stag beetle from Dominican Republic amber, with Australasian connections (Coleoptera: Lucan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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