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읽다/파충류

땅속에서 굴을 파고 집단으로 화석이 된 뱀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4. 10. 5. 07:39

 사람은 흔히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개인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살아간다는 것이죠. 이런 사회구조는 사람뿐 아니라 많은 동물에서 관측됩니다. 간단한 예시로 개미, 벌처럼 군집을 이루는 곤충이 있죠. 그리고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여러 초식동물이 있습니다. 코끼리 같은 동물 말이죠.

 그런데 파충류는 사회를 이루어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혹시 들어보셨나요? 파충류는 다른 동물보다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시지는 못하였을 겁니다. 대부분의 파충류는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기보다는 홀로 생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게 곧 파충류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 뱀을 보면 땅속에 굴을 파고 들어갈 때 간혹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도 합니다. 집단으로 뭉쳐있어야 추운 날씨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가터 스네이크(Garter snake)라고 하는 뱀은 특이하게 성격이 맞는 뱀끼리 더 친해지는, 이른바 '친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들면 겨울철에 같이 땅굴 속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하죠.

 재미있게도 최근에 화석기록에서도 이런 사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마리의 뱀이 집단으로 뭉쳐있는 모습이 화석으로 그대로 발견이 된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집단으로 모이는 습성이 있는 가터 스네이크.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amnophis_brachystoma.jpg

 

(1). 집단으로 발견된 뱀 화석

 1976년에 미국 와이오밍 대학교의 연구팀은 와이오밍주에 있는 컨버스 카운티(Converse County)라는 지역에 분포한 화이트 리버층에서 특이한 뱀 화석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지층의 연대는 3천2백만 년 전, 그러니까 신생대 고제3기 올리고세 시기에 발견되었습니다. 2024년에 이 뱀 화석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뱀 화석을 연구한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교와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호주 아들레이드 대학교, 남호주 박물관,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교의 연구진은 이 뱀에게 히베르노피스 브레이타웁티(Hibernophis breithaupti)라는 학명을 붙였습니다.

 이 뱀이 특이한 이유는 바로 4마리가 집단으로 모여서 화석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뱀 화석은 한 마리씩만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뱀들은 4마리가 뭉쳐서 화석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히베르노피스 브레이타웁티의 화석. 출처- Croghan et al (2024).

 

 이 뱀 화석은 매우 특별한 화석이었습니다. 앞서 말하였듯이 집단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뱀 화석에서는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전신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시 북미대륙은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하던 시기였는데, 땅속에도 화산재가 쌓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 뱀 화석이 발견된 암석은 이암으로, 진흙이 뭉쳐서 만들어진 암석입니다. 이는 화산재가 섞인 미세한 진흙이 미세한 부분까지 땅굴 속에 있는 뱀들을 덮었던 것입니다. 이 덕분에 뱀의 화석이 파손되거나 풍화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뱀화석은 살아있을 때 뼈가 융합된 것이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뱀들은 왜 집단으로 뭉쳐서 화석이 된 걸까요? 오늘날 뱀들은 앞서 소개한 대로 추운 날씨에 땅속에 굴을 파고 집단으로 뭉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의 특성상 이렇게 집단으로 뭉쳐서 체온을 유지하는 습성은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죠. 위에서 소개한 가터 스네이크가 그 좋은 예시입니다.

 

(2). 히베르노피스와 왕뱀의 진화

 히베르노피스는 신체가 매우 온전히 발견되었습니다. 이 뱀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이 뱀이 왕뱀상과에 속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류군에는 오늘날 왕뱀, 흔히 보아라고 하는 뱀이 속합니다. 독이 없고 몸집이 크며 (물론 작은 보아과도 있습니다.) 먹이를 몸으로 졸라서 죽이는 습성이 있는 뱀들이죠. 영화 아나콘다 시리즈로 유명한 아나콘다 역시 이 분류군에 속합니다. 이 분류군에는 아나콘다처럼 큰 뱀 외에도 땅에 굴을 파는 모래보아라는 뱀이 있습니다. 이 뱀들은 몸집이 크지 않습니다. 대신 납작한 머리에 두툼하고 뭉툭한 곤봉과 비슷한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꼬리뼈의 형태 때문입니다. 히베르노피스의 꼬리뼈도 비슷한 특징이 있었던 것입니다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오늘날 모래보아는 척추뼈가 잘 발달되어 있고, 중추신경이 지나가는 통로를 이루는 신경 배돌기가 높이가 낮기에 부착되는 근육이 두툼하게 몰려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 뱀들은 꼬리뼈 하단의 돌기가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히베르노피스에서도 보입니다). 그런데 히베르노피스의 머리뼈를 보면 보아뱀상과보다는 비단뱀과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왕뱀의 머리와는 형태가 매우 달랐지요. 따라서 연구진은 히베르노피스를 원시적인 왕뱀상과에 속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오늘날 모래보아의 모습.히베르노피스는 이 뱀들과 신체에서 공통점이 있고 동시에 차이점이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Erycinae

 

 원시적인 왕뱀상과에 속하는 히베르노피스는 뱀의 진화에 대해서 단서를 제공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 뱀들은 뱀이 단체로 땅속에 굴을 파고 살았다가 화석이 되었습니다. 즉, 뱀이 땅속에 집단으로 굴을 파고 생활하는 것을 시작한 시기가 최소한 3천 8백만 년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히베르노피스는 1) 3천8백만 년 전에 땅속에 굴을 파고 살았으며, 2) 오늘날 모래보아와 비슷한 꼬리, 동시에 오늘날 왕뱀과는 다른 구조의 머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징들을 근거로 히베르노피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땅에 굴을 파는 모래보아뱀이 진화한 경위에 대한 단서가 될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히베르노피스가 왕뱀상과에서 어느 뱀과 가까운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체의 유사성을 미루어볼 때 히베르노피스는 왕뱀 중에서 모래보아와 가까울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땅에 굴을 파면서 살아가는 왕뱀의 진화에 대해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 것일지 모른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뱀은 뼈가 생각보다 연약하기에 화석이 될 때도 전신이 온전히 보존되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러니 뼈가 살아있을 때처럼 융합된 채로 보존된 히베르노피스의 화석은 그 학술 가치가 매우 큰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화석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연구되어서 뱀의 진화에 대해서 더 많은 비밀이 밝혀졌으면 합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arter_snake#Social_behavior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4/07/240719180253.htm

(ScienceDaily: New snake discovery rewrites history, points to North America's role in snake evolution)

 

Croghan, J. A., Palci, A., Onary, S., Lee, M. S., & Caldwell, M. W. (2024). Morphology and systematics of a new fossil snake from the early Rupelian (Oligocene) White River Formation, Wyoming.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zlae073.

 

Skinner, M., & Miller, N. (2020). Aggregation and social interaction in garter snakes (Thamnophis sirtalis sirtalis). Behavioral Ecology and Sociobiology, 74(5), 5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