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은 남성만의 학문인가(3). 2차 세계대전, 비운의 고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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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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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지금까지 19세기의 고생물학자 매리 애닝과 그녀의 두 친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시간을 좀 더 돌려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 즈음으로 가봅시다.

 

(1). 고생물의 두뇌를 연구하자! 

독일의 여성 고생물학자 틸리 에딩거.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Tilly_Edinger

 1897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틸리 에딩거라는 여성이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루드위그 에딩거는 유대인으로 해부학자이자 두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매우 부유하였기에 틸리는 어린 시절 청각에 문제가 있어 학교가 아닌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큰 어려움 없이 교육을 받으며 살수 있었습니다. 12살에 마침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그녀는 고생물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12년에 발간된 오스트리아의 고생물학자 오테니오 아벨이 저술한 '고생물학(Palaeobiologie)'이라는 책이었습니다.

틸리 에딩거에게 영향을 준 저서 '고생물학'. 출처-https://www.biodiversitylibrary.org/item/125655#page/1/mode/1up

 그러나 20세기 초 당시에는 아직 여성이 고생물학을 한다는 것이 아직 어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에 지질학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학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결국 에딩거는 1919년 하인델베르그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행히 1921년 그녀는 고생물학을 전공할 수 있도록 받아들여졌고 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연구 주제는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해양 파충류 노토사우루스였습니다. 그녀의 지도교수는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의 프릿츠 데르베르만 박사였습니다. 그녀가 박사학위를 얻고 젠켄베르크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할 때에도 좋은 멘토가 되어주기도 하였지요. 그녀의 스승과 함께 에딩거는 노토사우루스, 플레시오사우루스류, 시조새(아르케이옵테릭스)의 뇌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1929년 그녀는 화석 생물의 두뇌 연구 결과를 무려 25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으로 작성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에딩거는 이 논문의 제목을 '나의 위대한 두뇌 논문(Die fossilen Gehirne)'이라고 지었습니다. 

 

(2). 나치가 지배한 독일

 1933년 히틀러가 총통으로 취임하고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게 되면서 유대인이었던 에딩거와 가족 역시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오빠는 홀로코스트에서 사망하였고, 에딩거는 1938년 박물관에서 갑작스럽게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영국으로 피신하여 의학 교과서 번역 일을 하였는데, 학교를 다닐떄 프랑스어, 영어를 배운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번역 일을 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연구를 계속하였는데, 1917년에 나온 공룡의 거대함에 대한 연구의 후속 작업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1942년에 발표되었지요. 1940년 5월 11일, 그녀는 미국의 뉴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의 척추 고생물학자이자 '파충류의 골격'을 저술한 알프레드 로머교수의 도움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연구하면서 학생들 강의도 하였다고 합니다.

 

알프레드 로머 박사.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Alfred_Romer

에딩거의 연구 활동은 미국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에딩거는 포유류를 실험하면서 생물이 거대해지는 것이 성장 호르몬을 분비하는 두뇌의 전두엽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하기도 하였죠.  그외에 말과 파충류, 조류, 공룡의 두뇌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고생물의 두뇌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기었으며, 그녀의 친구 조지 게이로드 심프슨이 쓴 이민국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녀가 학자로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전 세계의 최고의 연구과학자이다. 그녀는 멸종한 생물의 뇌와 신경계, 두뇌의 진화에 대해서 뛰어난 특기로 어디에서든지 유명하였다. 그녀는 그 분야에서 매우 출중하며 고신경학이라는 놀라운 가치를 지닌 중요한 학문으로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녀는 또한 척추고생물학회(Society of Vertebrate Paleontology)의 창립맴버이기도 하였고 1963년 최초의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1967년 5월 27일 교실에서는 은퇴하였지만, 아직 연구활동을 하던 때에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로 인해 얻은 머리부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에딩거가 사망한 후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가 1804년부터 1966년까지  모아오고 연구해왔던 고신경학 자료들을 모아서 1973년에 출간하였습니다(이 책은 지금도 아마존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틸리 에딩거가 모아온 고신경학에 대한 자료들을 출간한 책. 출처-https://www.amazon.com/Paleoneurology-1804-1966-Annotated-Bibliography-Embryology/dp/3540070605/ref=sr_1_2?dchild=1&keywords=paleoneurology&qid=1604315930&sr=8-2

 

비운의 고생물학자 에리카 본 후에네 

 1905년 독일의 튀빙겐에서 척추고생물학자 프리드리히 폰 후에네의 딸 에리카 본 후에네가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플라테오사우루스, 프로토케라톱스, 믹소사우루스등 수많은 업적이 있었던 저명한 고생물학자였지요. 그녀는 1933년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주요 연구 주제는 트라이아스기 후기(2억 8백만 년~2억 1백만 년 전)의 공룡과 파충류들이었지요. 그녀는 연구를 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의 업적으로 훼두목(도마뱀과 가까우나, 도마뱀에 속하지 않는 파충류의 한 분류군)의 한 종류 파키스트로페우스 라에티쿠스(Pachystropheus rhaeticus)와 티모르섬에서 발견된 모사사우루스류를 보고한 것이 있습니다. 그 외에 포유류의 이빨과 양서류의 화석에 대해서도 연구하였지요. 그녀는 총 7개의 논문을 저술하였습니다.

어류 사우리크티스를 쫓는 파키스트로페우스.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chystropheus_and_Saurichthys_JWArtworks.png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에리카 역시 나치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에딩거처럼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경건주의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이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 봉양을 위해서 연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녀는 연구를 계속하고자 하였고 2차 세계대전 후 아버지가 지질학, 고생물학 박물관 재단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희망을 품기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49년 마지막 논문을 내는것을 끝으로 연구활동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2주일 후인 1969년 향년 63세로 사망하였습니다. 

14살의 에리카 본 후에네. 출처-Turner, S., et al, (2010).

(계속)

 

자료 출처-

Turner, S., Burek, C. V., & Moody, R. T. (2010). Forgotten women in an extinct saurian (man's) world. Geological Society, London, Special Publications, 343(1), 11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