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들소나 영양처럼 뿔이 있는 동물들은 뿔을 이용해서 서로 싸움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번식 시즌이 되면 하나의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싸우지요(이때 승자가 암컷에게 선택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암컷이 둘 다 선택을 하지 않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는군요.). 이들은 싸울 때 주로 고개를 숙여서 뿔을 정면으로 내세운 뒤에 맞대어서 밀어내는 힘겨루기 식이나 상대를 뿔로 들이받는 방식으로 싸웁니다.
이런 식으로 수컷끼리 싸우는 일은 아마도 공룡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었을 겁니다. 공룡 중에서도 뿔을 가진 뿔공룡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이들도 오늘날 들소나 영양처럼 뿔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사용하였을까요? 2004년 뿔공룡 중에서 가장 유명한(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룡인) 트리케라톱스의 뿔 사용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였던 앤드류 파크 박사에 의하면 트리케라톱스는 동족끼리 싸울 때 뿔을 3가지 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 한 개의 뿔을 맞대어서 싸우는 방식-single horn contact (SHC)
눈 위에 있는 뿔을 하나씩 서로 부딪혀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싸웁니다.
2. 두 개의 뿔을 맞대어서 싸우는 방식- full horn locking (FHL)
제가 어릴 적에 자주 보았던 공룡 다큐멘터리 ‘공룡 대탐험’에서 등장하였던 트리케라톱스와 아주 가까운 뿔공룡 토로사우루스가 싸우던 방식입니다. 두 개의 뿔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는 방식이죠.
공룡대탐험에서 묘사된 토로사우루스끼리의 싸움(1분6초부터).
3. 뿔을 교차해서 싸우는 방식-oblique horn locking (OHL)
두 개의 뿔을 사용해서 싸우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2번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고개를 돌려서 뿔을 서로 교차해서 싸우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죠. 이 경우에도
파크 박사는 트리케라톱스의 싸움 방식을 연구하면서 저 3가지 방식으로 싸웠을 경우 트리케라톱스가 얻을만한 상처(뿔에 의해서 생긴 상처)가 있을만 한 곳을 예상해보았습니다. 그 위치는 뿔 끝과 뺨, 그리고 프릴이지요.
그리고 현재까지 발견된 트리케라톱스들의 두개골 중에서 상처의 흔적이 있는 두개골을 찾아본 결과, 파크 박사가 예상했던 부위와 비슷하게 상처가 회복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파크 박사는 프릴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용도 외에 방어용으로도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단 이에 관해서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파크 박사는 트리케라톱스가 뿔을 사용하던 방식이 오늘날 들소나 영양과는 달랐으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뿔의 형태와 길이가 너무 판이하게 다르고, 뿔공룡들은 프릴(뒤통수에 방패와 비슷하게 생긴 신체 부위)의 존재 및 목의 유연성 부족으로 들소나 영양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뿔공룡은 다른 방식으로 뿔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파크 박사가 트리케라톱스와 더 비슷한 사례로 든 건 카멜레온, 그중에서 뿔이 달린 잭슨카멜레온입니다. 이들은 트리케라톱스와 뿔이 난 형태도 비슷하고, 심지어 싸울 때 파크 박사가 주장하였던 모델과 비슷한 자세로 싸웁니다.
잭슨카멜레온의 싸움. 트리케라톱스의 싸움 모델과 비슷한 자세를 보이며 싸운다(52초부터).
물론 뿔공룡의 뿔의 형태가 종마다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모든 뿔공룡들이 트리케라톱스처럼 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센트로사우루스처럼 뿔이 하나만 있는 공룡도 있었고, 에이니오사우루스처럼 휘어진 경우도 있었지요. 아예 파키리노사우루스, 아켈로우사우루스처럼 뿔이 없고 그 자리에 커다랗고 두툼한 혹이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싸우진 않았을 겁니다. 이는 곧 뿔공룡이 얼마나 번성하였고 또 성공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연구 출처-
Farke, A. A. (2004). Horn use in Triceratops (Dinosauria: Ceratopsidae): testing behavioral hypotheses using scale models. Palaeontologia Electronica, 7(1), 10p.
Farke, A. A., Wolff, E. D., & Tanke, D. H. (2009). Evidence of combat in Triceratops. PLoS One, 4(1), e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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