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 이야기

5억년이 넘는 미스터리- 너는....정체가 무엇이냐?!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2. 7. 28. 06:48

  고생물학은 화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화석은 과거에 생물의 흔적이 돌과 같은 성분으로 변이하여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죠. 생물의 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뼈, 껍질등 단단한 부분이 주로 화석으로 남습니다. 그 외에 발자국, 알, 기타 흔적이 화석으로 남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간혹 화석으로 발견된 생물의 흔적 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도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석 중에서 매우 특이하게 생긴 화석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1). 벌집과 비슷하게 생긴 특이한 구조물

   1850년에 이탈리아의 지질학자 조세프 기오바니 안토니오 메네기니(Giuseppe Giovanni Antonio Meneghini)는 특이하게 생긴 화석을 학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알프스산맥, 그중에서 토스카나주 인근의 지질을 조사하였습니다. 조사를 하던 와중에 특이하게 생긴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벌집과 비슷한 육각형 구조가 모여있는 구조를 한 화석이었습니다. 언뜻 봐서는 벌집이 화석으로 남은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정체를 정확히 알수 없는 이 화석에 메네기니는 팔레오딕티온(Paleodictyon)이라는 학명을 부여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사비오강 근처에서 발견된 팔레오딕티온의 화석.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leodictyon

 

   그런데 메네기니가 보고하기 이전에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은 이미 기존에 발견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무려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된 것으로 보입니다. 팔레오딕티온을 발견하고 기록한 사람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를 그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외에도 많은 분들이 알듯,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화석이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낸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가 남긴 스케치를 보면 팔레오딕티온으로 추정되는 화석의 스케치가 그려져 있습니다. 다빈치가 화석을 기록한 것을 연구한 포르투갈의 학자 안드레아 바우콘(Andrea Baucon) 4가지 근거로 이것이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화석 등 지질학적 물체와 같이 기록되었다는 점, 2) 다른 기하학, 또는 기술 연구를 다룬 것처럼 메모가 기록되지 않은 점, 3)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은 다빈치가 여러번 조사를 하였던 이탈리아의 아페님 포레딥(Apennine foredeep)지역에서 발견된 점, 4) 다빈치가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을 그린 책은 주로 흔적화석과 생물이 남긴 흔적을 조사한 것을 기록해 둔 것. 이 주장이 맞다면 팔레오딕티온은 꽤 오래전에 이미 알려진 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팔레오딕티온. 출처- Baucon (2010a).

 

  팔레오딕티온을 남긴 생물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서 살았던 듯합니다. 화석기록을 보면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은 무려 캄브리아기, 그러니까 대략 5억년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공룡이 살던 시대인 중생대, 그리고 공룡 시대 이후인 신생대 중기 마이오세, 그러니까 대략 1천 5백만 년 ~ 1천만 년 전 즈음까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생존 시기가 대략 5억 년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발견된 지역도 매우 다양합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 독일, 체코, 그리고 불가리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유럽 외에 지역에서는 이란, 호주, 캐나다, 터키, 아르헨티나, 대만, 일본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즉, 팔레오딕티온을 남긴 생물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매우 넓은 범위에서 서식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발견된 해양 환경도 깊은 심해에서부터 얕은 바다까지 다양하였습니다.

 

이란에서 발견된 팔레오딕티온의 화석. A) P. latum. B) 1, P. majus; 2, P. strozzi. C) P. miocenicum. 출처- Malekzadeh &  Wetzel (2020).
스페인 산 델모 해변가에서 발견된 신생대 팔레오딕티온의 화석. 이 화석은 개체 하나의 지름이 13센티미터, 전체 너비가 0.5제곱미터로 매우 거대한 크기의 팔레오딕티온 화석이다. 출처- Wetzel (2000).

  그러면...이 팔레오딕티온은 대체 무엇일까요? 아쉽게도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크게 2가지 견해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생물이 남긴 땅굴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는 거대한 단세포생물이라는 것입니다.

 

(2). 생물이 남긴 흔적일까?

  1976년에 대서양의 심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생물이 살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류였습니다. 아주 깊은 심해에는 햇빛이 닿지 않습니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심해에서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에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나 식물성 플랑크톤도 살아갈 수 없어 생태계의 기반 역할인 생산자가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깊은 심해에서는 수압이 매우 강력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강한 수압은 생물이 그곳에 들어갔다간 찌그러지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1970년대까지는 심해에서는 생물이 살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지나고 난 후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인류는 깊은 심해를 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거치고 난 후로 깊은 심해를 다닐 수 있는 잠수함, 그리고 심해를 탐사할 수 있는 초음파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깊은 심해탐사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가본 심해의 모습은...매우 환상적이었습니다! 별다른 생물이 없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깊은 심해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어쩌다가 생물을 보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생물이 모여서 아주 크고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심해의 생물들은 열수공 근처에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열수공은 일종의 해저 화산입니다. 육지에서 화산은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깊은 심해에 있는 열수공은 전혀 상황이 달랐습니다. 열수공은 검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연기에는 마그네슘, 망간 등 여러 광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메탄이나 황과 같은 물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박테리아들은 이 물질을 이용해서 영양분을 얻습니다. 마치 육상의 식물이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이 박테리아들은 햇빛 대신 메탄 같은 화학물질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를 화학합성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박테리아가 서식하기에 이들을 잡아먹는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을 잡아먹는 생물이 있기에 깊은 심해에서도 생태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고래와 같은 거대한 생물이 죽어 심해로 가라앉게 되면 그곳은 말 그대로 만찬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고래의 무분별한 포획은 깊은 심해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열수공 근처의 생태계)

 

 이만 각설하고, 과학자들은 심해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팔레오딕티온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심해를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팔레오딕티온과 매우 유사한 구조물을 발견하였습니다. 대략 10cm 즈음의 여러 땅굴이 벌집과 비슷한 형태로 파여있는 형태의 구조물이었습니다. 대서양 외에도 이 구조물은 극지방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대서양에서 발견된 팔레오딕티온으로 추정되는 구조물. 빨간색 레이저 사이의 거리:10cm. 출처- Rona et al (2009).

 

  아쉽게도 이 구조물을 만든 생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구조물은 여러 번 보고되었지만 전부 다 '빈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구조물을 조사한 결과, 학자들은 이 구조물에 여러 개의 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물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관은 아마 물뿐 아니라 플랑크톤이나 영얌영류도 같이 빨아들일 것 입니다. 빨려 들어간 플랑크톤이나 영얌 염류는 그 안에서 서식하는 생물의 먹이가 되겠죠. 이 관은 구조물의 중앙부에 위치한 것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즉,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중앙부에 있는 긴 관에 빨려 들어간 먹이는 구조물 안에서 갇힌 채로 구조물을 만든 존재에게 잡아먹힐 것입니다.

 

대서양에서 발견된 팔레오딕티온으로 추정되는 땅굴의 형태. 여러개의 관은 물을 빨아들이는데에 사용된다. 출처- Rona et al (2009).

  팔레오딕티온이 정말로 이런 땅굴 구조물인가는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는 이 견해, 그러니까 해저에 서식하는 생물이 남긴 흔적이라는 견해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물이 땅굴을 판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것은 흔적 화석입니다. 이 견해대로라면 팔레오딕티온 역시 흔적 화석인 셈입니다.

 

(3). 생물 그 자체일까?

  다만 몇몇 견해에서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팔레오딕티온의 생김새 그 자체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팔레오딕티온은 그 자리에서 고정된 채로 성장한 생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해저 바닥에는 바닥에 고정된 상태로 살아가는 여러 생물이 있습니다. 말미잘, 산호등이 그 예시중 하나이죠. 몇몇 견해에 따르면 팔레오딕티온의 정체는 이렇게 바닥에 고정된 채로 살아가는 단세포생물의 일종인 크세노피오포라(Xenophyophorea)라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이 생물은 언뜻 보기에는 산호나 해면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 거리가 꽤 먼 생물입니다. 이들은 주로 물에 떠다니는 유기물질이나 박테리아를 먹으며 생활하는 생물입니다. 이 생물들은 재미있는 생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배설물을 이용해서 일종의 '농장'을 만듭니다. 정확히는 박테리아를 기르는 농장입니다. 자신들의 배설물로 박테리아를 기르고, 그 박테리아를 먹고, 다시 배설물로 박테리아를 기르고 다시 잡아먹는...그런 생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 견해는 크게 많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몇몇 팔레오딕티온의 화석은 크세노피오포라보다 훨씬 더 큰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크세노피오포라는 팔레오딕티온만큼 규칙적인 구조물을 이루는 형태는 아니라는 점으로 인해 흔적 화석이라는 견해만큼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크세노피오포라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Xenophyophorea

  크세노피오포라외에도 팔레오딕티온의 정체가 해면류일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육방해면류(glass sponge)라고 하는 이 생물들은 팔레오딕티온처럼 육각형 형태의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저 바닥에서 살아가는 해면류의 일종입니다. 유리와 비슷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신체는 팔레오딕티온처럼 육각형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특징 덕분에 팔레오딕티온의 정체가 이 해면류가 아니냐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소라껍질에 부착된 육방해면류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Hexactinellid

 여전히 팔레오딕티온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연구방법이 도입된다면 새로운 결론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전혀 상상해내지 못한 또 다른 결론 말이죠. 이런 결론들을 통해서 과거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youtu.be/Pz1fccY3S84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751

 

Baucon, A. (2010a). Da Vinci’s Paleodictyon: the fractal beauty of traces. Acta Geologica Polonica, 60(1), 3-17.

 

Baucon, A. (2010b). Leonardo da Vinci, the founding father of ichnology. Palaios, 25(6), 361-367.

 

Kikuchi, K. (2018). The occurrence of Paleodictyon in shallow-marine deposits of the Upper Cretaceous Mikasa Formation, Hokkaido Island, northern Japan: Implications for spatiotemporal variation of the Nereites ichnofacies. Palaeogeography, Palaeoclimatology, Palaeoecology, 503, 81-89.

 

Malekzadeh, M., & Wetzel, A. (2020). Paleodictyon in shallow-marine settings–an evaluation based on eocene examples from Iran. Palaios, 35(9), 377-390.

 

Rona, P. A., Seilacher, A., de Vargas, C., Gooday, A. J., Bernhard, J. M., Bowser, S., ... & Lutz, R. A. (2009). Paleodictyon nodosum: A living fossil on the deep-sea floor. Deep Sea Research Part II: Topical Studies in Oceanography, 56(19-20), 1700-1712.

 

Wetzel, A. (2000). Giant Paleodictyon in Eocene flysch. Palaeogeography, Palaeoclimatology, Palaeoecology, 160(3-4), 17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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