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포스트에서 보셨듯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등장한 공룡 복제방식은 아이디어는 기발하지만, 생각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을 넘어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공룡 복원을 주장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룡을 복원하는 것을 주장하였던 것일까요?
1. 진화생물학
현대 생물학계에서는 생물이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계통도이지요. 계통도는 생물이 시간을 따라서 진화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성을 가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공룡 복원에서 계통도 이야기가 왜 나오냐고요? 공룡의 계통도를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겁니다. 사실 이 계통도 대로 우리는 이미 공룡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긴 하지요!
만약에...이 계통도를, 역행하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새를 조상의 모습을 가지게끔 조작을 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배아 발달과정에서 조작을 가하면 되지요.
2. 조상의 흔적을 가진 후손
아기가 태어날 때 가끔 이런 사례를 볼 수 있으실 겁니다. 꼬리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아기, 또는 다리를 가지고 태어난 뱀 등등....그냥 기형아로 태어난 거 같지만 사실 이는 진화생물학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수정된 배아가 발달하여 자라면서 조상의 모습에서 후손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를 주관하는 유전자가 바로 혹스 유전자(Hox gene)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 2개, 코 1개, 입 1개, 10개의 손가락, 발가락을 가지게 된 것이 모두 이 혹스 유전자 덕분이지요. 사람의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아가미를 가지고 있다가 이것이 퇴화되어 사라지고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이런 과정은 혹스 유전자가 배아가 가지고 있는 조상의 특징을 만드는 유전자의 어떤 것은 발달과정의 스위치를 끄고 어떤 것은 발달과정의 스위치를 끄지 않는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간혹 이 혹스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럴 경우엔 퇴화되어야 할 조상의 흔적이 후손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조상의 특징을 후손이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혹스 유전자가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배아가 가지고 있는 조상의 유전자를 제대로 끄지 못할 경우에 말이죠. 이럴 경우에는 조상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3. 닭을 바꾸자
이 현상을 토대로 해서 공룡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오늘날 새는 살아있는 공룡이기에 새에게는 여전히 공룡의 유전자가 남아있습니다. 이 유전자에는 깃털처럼 지금도 남아있는 형질을 발현하는 것도 있지만, 이빨처럼 지금은 발현되지 않는 형질을 만드는 유전자도 존재하겠지요? 이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를 발현되게끔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2009년에 처음 제안되었습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잭 호너 박사는 뉴욕타임스의 과학 에디터인 제임스 고어먼과 함께 책을 하나 출간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공룡을 어떻게 복원하는가-멸종은 영원할 필요 없다-'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쥬라기공원 4편(현재 우리가 아는 쥬라기월드가 아닌 그보다 훨씬 이전에 고안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을 기획하던 중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잭 호너 박사와 연구진은 닭의 배아를 조작하여서 공룡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닭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기에 치키노사우루스(Chikenosaurus) 프로젝트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존 호너 박사는 2011년 TED에 나와서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공룡을 복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진화생물학과 발달생물학을 가르치기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4. 닭에서 공룡을 복원하는 과정.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1). 이빨과 주둥이
그러면 이 프로젝트에서 주장한 것은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일까요? 새의 발달 과정에서 조상의 형질이 나타나는 연구는 1821년에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1821년에 프랑스의 박물학자였던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는 앵무새의 배아가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이빨과 비슷한 구조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던 탓이었는지 당시에 이 발견은 크게 주목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새에게서 이빨을 자라게 하는 유전자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6년에 발표된 연구 덕분이었습니다. 미국의 위스콘신대학교의 메튜 해리스 교수와 영국의 맨체스터대학교의 공동연구진이 처음 닭의 배아에서 악어의 것과 비슷한 이빨이 돋아나는 것을 관측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talpid2라고 명명된 이 닭의 배아는 비록 부화할 때까지 성장하지는 못하였지만 과학자들이 닭에게서 이빨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라난 이빨의 형태는 악어의 이빨과 매우 닮은 원뿔 모양이었습니다.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 중에선 악어가 새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할 만한 일은 아니긴 하지요. 연구진은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약간의 조작을 통해서 닭의 배아에서 이빨이 자라나게 하는 방법까지 알아내었습니다. 유전자가 비활성화되지 않도록 배아의 발달과정의 경로를 살짝 비틀은 결과 더 많은 닭의 배아에서 이빨이 자라게 된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이빨뿐 아니라 닭에서 부리가 아니라 파충류, 정확히는 악어의 주둥이와 비슷한 모습의 주둥이를 가지게 하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 예일대학교와 캔자스 자연사 박물관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와 자연사 박물관의 공동 연구진은 닭의 이마-코, 그리고 얼굴 부분을 발현하게 하는 유전자를 억제하는 억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배아의 발달을 멈추게 한 것이었죠. 그 결과 닭의 배아에서 얼굴의 형태가 파충류, 특히 악어의 주둥이와 비슷한 형태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화석기록에서 새의 부리가 파충류의 주둥이에서 기원하였다는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실험이었습니다.
(2). 발가락
그러면 주둥이나 이빨 이외에 또 어떤 실험이 있었을까요? 2015년에는 이빨과 주둥이뿐 아니라 다리를 복원하는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칠레 대학교의 연구진은 일본 메추라기와 닭의 배아에서 다리의 발달과정에서 다리의 성장을 억제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무엇을 억제하였냐면, 발가락의 성장을 억제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새의 첫 번째 발가락은 완전히 뒤로 돌아간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먹이를 잡을 때 사용되는 발가락으로, 조상의 발가락이 변형되어서 생긴 것입니다. 이 발가락은 1번째 중족골, 즉 발바닥을 이루는 뼈가 휘어지면서 생겨난 발가락으로, 화석기록을 보면 공룡 및 시조새등 새로 가까워지는 분류군일수록 1번째 발가락이 휘어지지만, 이 발가락을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진은 이 발달과정이 닭의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억제하는 약을 사용하여서 발달과정을 지연시키는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 중족골이 일반적인 새의 뼈처럼 뒤로 돌아가지 않고 연골처럼 좀 더 부드러운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태는 일반적인 새의 첫 번째 발가락처럼 뒤로 휘어지지 않고 공룡의 것과 더 비슷한 형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새의 배아를 조작해서 현재 주둥이와 이빨 및 발가락을 비조류 공룡과 비슷하게 발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5. 찬성과 반대
이렇게 보면 공룡의 복원은 생각보다 간단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는 현재는 법적, 생명윤리적인 문제로 인해서 진행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에 비판적인 입장도 존재합니다. 사실 새의 이빨을 돋아나게 하는 유전자의 존재를 확인한 해리스 교수마저 여기에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실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만약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며, 치키노사우루스는 진짜 공룡이 아니라 엉망이 된 닭일 뿐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정말로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은 새의 역사를 통해서, 거기에 있는 생물학적인 특성이 공룡에 대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잭 호너 박사는 치킨노사우루스 연구는 생물학적 지식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우리에게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척추질환 등 병을 치료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닭이나 다른 조류의 배아의 성장을 억제하여 새가 아닌 공룡과 비슷한 형태를 하게 하는 프로젝트. 여러분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ack_Horner_(paleontologist)
https://en.wikipedia.org/wiki/How_to_Build_a_Dinosaur
Bhullar, B. A. S., Morris, Z. S., Sefton, E. M., Tok, A., Tokita, M., Namkoong, B., ... & Abzhanov, A. (2015). A molecular mechanism for the origin of a key evolutionary innovation, the bird beak and palate, revealed by an integrative approach to major transitions in vertebrate history. Evolution, 69(7), 1665-1677.
Botelho, J. F., Smith‐Paredes, D., Soto‐Acuña, S., O'Connor, J., Palma, V., & Vargas, A. O. (2016). Molecular development of fibular reduction in birds and its evolution from dinosaurs. Evolution, 70(3), 543-554.
Francisco, B. J., Smith,P. D., S, A. S., M, J., Palma, V., & Vargas, A. O. (2015). Skeletal plasticity in response to embryonic muscular activity underlies the development and evolution of the perching digit of birds. Scientific Reports, 5(1), 1-11.
Harris, M. P., Hasso, S. M., Ferguson, M. W., & Fallon, J. F. (2006). The development of archosaurian first-generation teeth in a chicken mutant. Current Biology, 16(4), 37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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