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렉스요?'
'네.'
'티렉스가 있다고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우리는 티렉스가 있어요!'
쥬라기공원 1편 초반부에서 공원의 설립자 존 해먼드 회장과 고생물학자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티렉스가 있다고 하자 학자들이 매우 놀라는 장면이 나왔죠. 영화 쥬라기공원 시리즈에서 등장한 공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공룡이라 하면 누구나 티라노사우루스를 생각해낼 정도로, 누구나 실제로 저 상황에 있다면 놀랐을 겁니다. 확실히 티라노사우루스는 쥬라기공원 시리즈의 마스코트와 같은 공룡입니다. 영화의 포스터 및 로고에서 등장한 공룡이 티라노사우루스니 말 다한 셈이죠. 영화 속에서 항상 멋있는 모습을 보인 공룡이 바로 티라노사우루스입니다.
그런데, 사실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 학명은 하마터면 사라질뻔한 순간이 몇번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요?
1.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학명
티라노사우루스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1874년에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처음 발견된 표본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로, 당시에는 오르니토미무스라고 하는 타조와 비슷하게 생긴 공룡이라고 판단되어 오르니토미무스로 분류 되었습니다. 1892년에 고생물학자 에드워드 코프는 2개의 불완전한 척추뼈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 척추뼈가 뿔공룡의 것이라고 판단하여서 마노스폰딜루스 기가스(Manospondylus gigas)라는 학명을 붙였습니다. 이 표본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보다 더 온전한 부분이 보존된 티라노사우루스의 골격은 1900년에 와이오밍에서, 그리고 1902년에 몬태나주에서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바넘 브라운 박사가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1905년에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관장이었던 헨리 오스본 박사가 마침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라는 학명을 학계에 보고하였습니다. 당시에 그는 티라노사우루스 외에도 디나모사우루스 임페리오수스(Dynamosaurus imperiosus)이라는 학명을 같은 논문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중국, 러시아, 몽골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나 그 친척으로 동정된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중 몇몇은 독자적인 학명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몽골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Tyrannosaurus bataar), 중국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 투르파넨시스(Tyrannosaurus turpanensis)와 티라노사우루스 란핀겐시스(Tyrannosaurus lanpingensis), 티라노사우루스 주청겐시스(Tyrannosaurus zuchengensis), 티라노사우루스 루안쿠아넨시스(Tyrannosaurus luanchuanensis), 티라노사우루스 암플루스(Tyrannosaurus amplus), 티라노사우루스 임페리오수스(Tyrannosurus imperiosus)라는 종들이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종들은 후속 연구 끝에 티라노사우루스과의 일부나 혹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다른 표본으로 재동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티라노사우루스 투르파넨시스라고 명명된 종은 1990년에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로 재동정 되었습니다. 그 외의 티라노사우루스 종들은 모두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혹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표본으로 재분류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종이 보고되어왔지만, 종국에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1종만 남게 되었습니다.
2. 하마터면 사라질뻔한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
위에서 마노스폰딜루스라는 학명이 붙은 표본을 언급하였습니다. 본래 뿔공룡일 것이라고 추정되었던 이 표본은 1917년에 오스본 박사가 다시 연구한 결과 뿔공룡보다 티라노사우루스와 더 유사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그는 티라노사우루스와 마노스폰딜루스를 같은 공룡이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고 동정 불가(indeterminate)라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뜻밖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마노스폰딜루스로 명명된 표본이 사실 티라노사우루스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은 유효하지 않은 학명이 되고, 마노스폰딜루스라는 학명이 유지되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기존에 명명된 학명과 후에 명명된 학명이 알고 보니 같은 생물을 부르는 것이었다면 기존에 명명된 학명이 유효하다는 규칙 때문이지요 (공룡 이름은 왜 발음하기 어려울까 의 학명이 인정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 참조.). 따라서 이 규칙대로라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은 모두 마노스폰딜루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3.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
그런데 기적적이게도(?) 이 규칙에 한가지 예외 사항이 존재합니다. 2000년 1월 1일에 국제동물명명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Zoological Nomenclature)에서 50년간 유효한 학명으로 불린 학명은 유지될 수 있다는 규칙이 만들어진 덕분에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즉,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마노스폰딜루스로 바뀔 뻔 하였던 것이죠. 티라노사우루스가 전시된 전 세계의 모든 박물관의 팻말이 바뀌고 모든 미디어 매체가 티라노사우루스를 마노스폰딜루스로 바꾸어야 할 뻔한 순간을 가까스로 피했던 것입니다.
4. 디나모사우루스는 왜 사라졌던 걸까?
비슷하게도 오스본 박사가 티라노사우루스를 처음 명명할 때 다른 표본에는 디나모사우루스라는 표본을 명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디나모사우루스의 표본 또한 티라노사우루스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해당 논문을 저술할 때 티라노사우루스의 표본은 1902년에, 디나모사우루스는 1900년에 발견된 표본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즉, 표본의 발견된 디나모사우루스가 더 먼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발견된 순서대로 디나모사우루스의 표본이 먼저 기재되었다면 디나모사우루스라는 학명이 유효하고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이 사라질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논문에서는 순서가 반대로 기재되었습니다. 디나모사우루스보다 티라노사우루스가 1페이지 먼저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표본 발견은 더 늦었더라고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이 더 먼저 나온 것으로 인정되어서 디나모사우루스는 현재 티라노사우루스로 재동정되었습니다. 이때는 먼저 명명된 학명이 유효하다는 규칙이 인정된 것이죠.
이렇게 보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은 여러 번 없어질뻔 하였습니다. 만약 오스본 박사가 타리노사우루스가 아니라 디나모사우루스라는 학명을 먼저 기재하였거나 1~2년 더 먼저 다른 논문으로 저술하였다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혹은 국제동물명명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지 않았다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은 학계에서 유효하지 않은 학명이 될 뻔하였습니다. 만약 평행세계가 있다면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이 사용 안 되는 세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티라노사우루스의 종은 렉스 1종만 유효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구에서는 다시 또 티라노사우루스의 종을 3종으로 나누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계속)
연구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yrannosaurus#Additional_species
http://www.miketaylor.org.uk/dino/faq/s-class/priority/index.html
https://www.fossilguy.com/gallery/vert/dinosaur/tyrannosaurus/trex-discovery.htm
A. K. Rozhdestvensky. 1965. Vosractnay ismenchivosty i nekotorie voprosi sistematiki dinosavrov Asii [Growth changes in Asian dinosaurs and some problems of their taxonomy]. Paleontologicheskiy Zhurnal 1965(3):95-109
Osborn, H. F. (1905). Tyrannosaurus and other Cretaceous carnivorous dinosaurs: American Musuem of Natural History Bulletin, v. 21.
Osborn, H. F. (1912). Crania of Tyrannosaurus and Allosaurus (Vol. 1).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Osborn, H. F. (1917). Skeletal adaptations of Ornitholestes, Struthiomimus, Tyrannosaurus. Bulletin of the AMNH; v. 35, article 43.
R. E. Molnar, S. M. Kurzanov, and Z. Dong. 1990. Carnosauria. In D. B. Weishampel, H. Osmólska, and P. Dodson (eds.), The Dinosaur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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