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일까요? 개개인 각자의 견해는 다 다르겠지만 제 생각엔 결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 이전에는 자유분방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결혼 이후에는 책임져야 할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있으니까요. 결혼이란 건 그만큼 중요한 과제인 듯 합니다. 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죠. 그를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기도 하고요.
동물에게도 이성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중에는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소나 사슴 등 뿔을 가진 동물들 말입니다, 이들은 주로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죠 (다만 이렇게 싸워서 이긴다 해도 암컷이 모두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냥 떠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엔 승자없는 싸움이 돼버린 것이죠.). 이들은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번식기 철에는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러면 공룡은 어땠을까요? 최근에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와 로열 티렐 박물관의 공동 연구팀에 의해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공룡의 두개골에 난 상처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 공룡들 역시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웠던 듯합니다.
1. 얼굴에 난 흉터
연구팀은 총 528개체의 티라노사우루스류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의 두개골을 조사하였습니다. 알베르토사우루스, 다스플레토사우루스 등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공룡들의 두개골이었죠. 두개골을 살펴본 결과, 528개체에서 무려 324개의 흉터가 발견되었습니다. 물린 흔적은 주로 공룡의 위턱과 아래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흉터가 난 후에 다시 아물고, 또 흉터가 난 흔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이 흉터가 어린 개체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다 자란 성체에서만 발견되었다는 점이었죠. 마치 다 자란 개체들은 서로 주기적으로 마구 물면서 싸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누가 이 공룡들을 물었던 걸까요? 티라노사우루스류에 속하는 공룡들의 이빨 흔적은 상당히 풍부하게 발견되어왔습니다. 이빨뿐 아니라 이빨로 물었던 흔적 등 말이죠. 그런데 이 티라노사우루스류의 얼굴에 난 흉터를 분석한 결과, 같은 티라노사우루스류의 이빨 흔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이들은 동족들끼리 서로 마구 물었던 흔적인 것이죠.
2. 사랑을 얻기 위한 투쟁
그렇다면 이 공룡들은 왜 동족들끼리 서로 물었던 것일까요? 연구진은 3가지 패턴에 근거해서, 이들이 이성을 얻기 위해서 서로 싸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 이런 흔적이 어린 개체에선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2) 특정 나이대가 지나고 머리 크기가 일정 크기로 성장하면 갑자기 생긴다는 점, 3) 이빨로 물린 흔적은 계속 발견되지만, 그 패턴이 계속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죠. 어릴 때는 신체가 성숙하지 못해 번식을 못 하죠. 따라서 특정 나이 (사람으로 치면 최소 사춘기)를 지나 신체가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난 후에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할 테니까요. 게다가 보통 동물들은 사람처럼 평생을 한 배우자와만 살지는 않으니 일생에 걸쳐 여러 번 경쟁을 하였을 겁니다. 그러니 패턴이 항상 비슷하게 생겼겠지요. 이런 패턴은 오늘날 미국악어 (앨리게이터)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이 악어들은 성장한 후에 번식기 철에 수컷끼리 암컷을 차지하려고 싸우고는 합니다. 그럴 때 동족에게 물린 흔적이 발견되죠. 따라서 연구진은 그와 동일한 패턴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공룡들 또한 번식기 철에는 동족끼리 서로 물며 싸웠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구진은 또 재미있는 점을 하나 찾아내었는데, 여러 육식공룡 중에서 동족에게서 물린 흔적이 있는 공룡들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여러 육식공룡에서는 이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새와 가까운 분류군인 마니랍토라에 속하는 공룡에서는 이런 식으로 동족에게 물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들은 번식기 철에 동족끼리 서로 물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죠. 왜일까요?
오늘날 새와 파충류는 매우 가까운 친척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식기 철에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파충류는 서로 물리적으로 싸우지만, 새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 즉 화려한 깃털 색깔이나 춤, 깃털의 크기 등등으로 경쟁을 합니다. 즉, 물리적으로 싸우지는 않고 시각적으로 경쟁을 하죠. 공룡 중에서 마니랍토라 분류군에 속하는 공룡 (영화 쥐라기공원에서 나온 벨로키랍토르와 같은 공룡)들은 새와 매우 가까운 관계인 만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가 이 분류군에 속합니다.)아마 이들도 새와 비슷하게 경쟁을 해서 물린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새와 가깝지 않은 공룡들은 서로 물고 싸우면서 암컷을 얻으려 했다면, 새와 가까운 공룡들은 깃털의 색깔, 크기, 또는 춤처럼 시각적인 것으로 암컷을 얻으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사랑을 얻는다는 것은 역시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공룡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봅니다. 뭐, 그덕분에 성 선택이란것이 생기게 되고 진화의 또 다른 원동력이 생기긴 했지요.
연구 출처-
Brown, C. M., Currie, P. J., & Therrien, F. (2021). Intraspecific facial bite marks in tyrannosaurids provide insight into sexual maturity and evolution of bird-like intersexual display. Paleobiology,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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