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 이야기

한반도의 코끼리와 그 친척

화석사랑 지질사랑 2024. 10. 12. 05:32

 코끼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살고 있지 않은 동물입니다. 큰 덩치에 긴 코를 가진 이 멋진 동물은 현재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한반도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동물이지요 (물론 삼국시대 유물중에서 코끼리와 관련이 있는 유물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코끼리, 그리고 코끼리가 속한 분류군인 장비목의 화석이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쓴 글에서도 서해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화석이 언급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빨의 파편뿐이긴 하지만요 (보러 가기). 이번 글에서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장비목에 대해서 몇가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코끼리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sian_elephant

 

1. 북한의 장비목 화석

 우리나라에서 장비목의 화석은 오늘날 북한땅인 함경북도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서 처음으로 이빨 화석이 발견되어 보고된 것이었습니다. 이 화석은 당시 일본인 학자가 연구한 기록으로는 인도의 멸종된 코끼리인 아시아일직선상아코끼리(palaeoloxodon namadicus)의 이빨과 비슷한 생김새였다고 합니다. 후에 도쿄 제국대학교의 타카이 후주이 교수는 이 화석이 일본에서 발견된 몸길이 3미터 정도의 소형 코끼리인 나우만코끼리(Palaeoloxodon naumanni)와 유사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1937년에 타카이 교수는 황해도 장연군에서 또 다른 나우만코끼리의 이빨 화석을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발견을 토대로 일본 학자들은 인도에서 살던 원시적인 코끼리들이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으로 이주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많은 포유류들이 이주를 하였고 코끼리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란 거죠. 이때 발견된 화석들은 1938년에 도쿄 헌병대 소속의 미야모토 히로시에 의해서 도쿄 제국대학(오늘날 도쿄 대학교)으로 보내졌습니다.

 

아시아일직선상아코끼리의 모습 복원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laeoloxodon_namadicus

 

훗카이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나우만코끼리의 골격.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laeoloxodon_naumanni

 

 이 코끼리들 외에도 더 원시적인 코끼리의 친척인 곰포테리움과의 화석이 북한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곰포테리움과는 3천3백만 년 전 즈음에 지구상에 나타나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걸쳐 넓은 지역에서 화석이 발견된 원시적인 코끼리의 친척이었습니다. 이들은 3천 3백만 년 전부터 1만 2천 년 전 즈음까지 지구에서 살았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중국, 몽골에서 화석이 발견되었죠. 1936년에 함경북도 명천군에 분포한 기동층이라는 지층에서 장비목의 아래턱뼈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에서 발견된 원시 코끼리의 턱뼈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화석은 현재 일본 교토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화석이 발견된 기동층의 연대가 어디에 속하는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전기 마이오세로 분류되었습니다. 대략 2천만 년 전 즈음이지요. 1938년에 당시 교토대학교의 지로 마키야마 교수는 턱뼈 일부와 어금니만 남아있는 이 화석을 새로운 종류라고 분류하고 부놀로포돈 요코티(Bunolophodon yokotii)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1939년에 지질학자 타카이 후주이가 이 동물을 부놀로포돈 아넥텐스(Bunolophodon annectens)로 재분류하였고 그것이 2005년에 곰포테리움속으로 다시 재분류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이 화석은 곰포테리움 아넥텐스로 보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명천군 기동층에서 발견된 곰포테리움 아넥텐스의 화석. 출처- Makiyama (1938)

 

곰포테리움의 모습.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omphotherium

 

 해방 이후 북한 학자들에 의해서 시행된 연구로는 2021년에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발견된 곰포테리움과의 화석이 있습니다. 정확한 분류는 알 수 없지만 북한 학자들은 이빨의 형태 및 턱의 융합선의 위치를 근거로 최소한 이 화석이 곰포테리움과에 속하는 동물의 화석이며, 어쩌면 이 화석도 곰포테리움의 화석일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현재 이 화석은 북한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북한에서는 곰포테리움을 '꼭지이발코끼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뭔가 귀여운 이름이네요.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발견된 곰포테리움과의 화석. 출처- Han et al (2021).

 

북한에서 장비목의 화석이 발견된 지역.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of_Korea-blank.svg

 

2. 남한의 장비목 화석

 북한 영토에서 장비목의 화석이 여러번 발견되었다면 남한에서는 어떨까요? 남한에서도 몇몇 코끼리와 장비목의 화석이 발견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소개하였던 서해의 매머드 이빨 화석도 이 예시에 속합니다 (보러 가기). 그 외에 일제강점기에 백령도 인근 해안에서도 털매머드의 다른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화석은 위에서 소개한 나우만코끼리의 화석들과 함께 도쿄 제국대학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옮겨진 화석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별다른 연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원시적인 코끼리의 화석이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매머드를 비롯한 오늘날 코끼리와 비슷한 코끼리의 화석이 몇몇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하였던 서해의 매머드 외에 청추에 있는 두루봉이라는 동굴에서 옛코끼리의 상아 화석이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동굴에는 제2굴, 제9굴, 제15굴, 홍수굴, 새굴, 처녀굴등 여러 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홍수굴은 그 유명한 홍수아이의 화석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새굴에서 옛코끼리의 상아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61.8cm 길이인 이 상아의 주인은 오늘날 아시아에서 서식하는 아시아코끼리(Elephas maximus)의 멸종한 친척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상아에는 과거 인류가 손질한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즉, 과거 원시 인류가 이 코끼리를 사냥하였거나 혹은 죽은 시체에서 상아를 빼서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손질하였다는 것이죠. 이 동굴은 연대가 대략 10만년 전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면 인간의 시점에서 보면 매우 긴 시간으로 보이지만 지질학적으로 보면 매우 최근 시기입니다. 즉, 상당히 최근 시기까지 한반도에서 코끼리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루봉 새굴에서 출토된 옛코끼리 상아. 출처- 이융조 et al (1999)

 

고인류가 코끼리 상아에 자국을 남기는 모습 복원도. 출처- 이융조 et al (1999)

 

 화석 외에도 남한에서는 코끼리, 정확히는 매머드가 남긴 발자국이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 위치는 바로 제주도입니다. 제주도 사계리 해안에는 대략 2만 5천년 에서 4천년 전에 형성된 발자국 화석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과거 구석기 시대 인류, 말을 비롯한 여러 발굽 동물과 새등 여러 동물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매머드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도 있는 것입니다. 2004년에 처음 발견된 이 발자국은 기존에는 발견된 적 없는 한반도 최초의 장비목의 발자국 화석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장비목의 발자국을 전문으로 연구한 학자가 없었기에 장비목의 발자국을 연구한 경험이 있는 해외 학자들의 의견이 필요하였습니다. 따라서 현생 코끼리 발자국과 일본의 코끼리 발자국 화석을 연구한 경험이 있는 일본 학자들의 의견을 묻는 등 여러 노력 끝에 매머드 발자국이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하모리층에서 발견된 여러 발자국 화석. a: 고인류 발자국, b: 우제목의 발자국, c: 새 발자국, d:매머드 발자국. 출처- 양승영 (2023).

 

 코끼리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동물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비교적 최근 시기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살았음을 화석기록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수만 년, 수십만 년이 최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질학적으로 수만년, 수십만년은 말 그대로 짧은 시간입니다. 하루라는 시간이 사람에게는 짧지만 하루살이에게는 아주 긴 시간인 것처럼요.).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이유는 기후 및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후는 계속 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에 한반도에는 어떤 생물이 살게 될지 궁금하네요.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460

(통일뉴스: 북, 꼭지이발코끼리 화석·양덕샘물 새 천연기념물로 등록)

 

양승영. (2023). Discovery of mammoth tracks and the age of the hominid tracks in Jeju Island. 지질학회지, 59(3), 527-533.

 

이융남. (2005). 북한 함경북도 명천의 제 3 기층 기동층에서 기재된 Bunolophodon yokotii Makiyama, 1938 에 대한 새로운 고찰. 고생물학회지, 21(2), 157-165.

 

이융조, 우종윤, 하문식, & 조태섭. (1999). 청원 두루봉 새굴· 처녀굴 출토유물의 고고학적 연구. 선사와 고대, (12), 101-189.

 

Makiyama, J. (1938). Japonic Proboscidea. Memoirs of the College of Science, Kyoto Imperial University. Ser. B, 14(1), 1-59.

 

Han, K. S., So, K. S., Choe, R. S., & Kim, S. C. (2021). First Occurrence of a Gomphotheriid (Proboscidea, Mammalia)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Paleontological Journal, 55(10), 1186-1192.

 

Takai, F. (1959). On cenozoic vertebrates in Korea. International Geology Review, 1(10), 47-51.

 

高井冬二. (1937). 朝鮮黄海道白〓 島近海より發見されたる象齒に就いて. 地質学雑誌, 44(523), 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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